한국과 미국이 7월 8일까지 패키지 합의를 추진하되 방위비 인상이나 대(對)중국 제재 동참 등 민감한 이슈는 공식 논의 안건에서 제외했다. 협상에 속도를 내야 하는 미국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하지만 이 안건은 향후 별도 트랙으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올 가능성이 커 미리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2+2 통상 협의에서 방위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이날 백악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그 어떤 협상에서도 군대 문제를 다루지 않을 것”이라며 통상·안보 이슈를 분리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이번 협의에서 중국은 물론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도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협상의 틀은 마련하면서도 대화를 마비시킬 소지가 있는 현안들은 안건에서 배제된 것이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이나 한미 FTA는 정부 간 협정이어서 개정에 착수하면 1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소요 시간과 무관하게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라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일주일 전 일본과의 협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등장해 군사 지원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압박했던 것과 달리 한미가 민감한 문제를 안건에서 제외한 것은 수 개월 내 성과를 내야 한다는 데 양 측의 인식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주식·채권·외환시장의 움직임이 트럼프 행정부가 예상보다 관세정책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미국으로서는 상호관세를 빠르게 조정해 시장을 달래야 할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한국과의 2+2 협의에 대해 “한국이 최고의 제안(A game)을 가져왔다”고 치켜세우는 것도 시장에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전략적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방위비 인상이나 대중 제재 동참과 같은 사안은 권한대행 체제에서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 관계자는 “최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안보 이슈를 협상할 권한이 없지 않느냐”며 “미국 측 협상 책임자도 경제 관료여서 안보 이슈를 언급하는 것은 월권인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의를 바탕으로 상호관세 인하에 집중하면서도 방위비 인상이나 FTA 재협상과 같은 안건이 재점화될 가능성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는 “방위비 문제 등은 단지 오늘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라며 관세 혼란이 일단락된 뒤 다시 미국이 압박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전 대사는 FTA 재협상 문제에 대해서도 “품목관세가 부과되고 상호관세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FTA의 본질적인 내용을 수정하는 것”이라며 “양국 통상의 기본틀이 바뀐다는 관점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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