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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 ‘패싱’ 피하려면 힘 필요…핵 잠재력 확보하고 국익 외교 펴야”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거래적 동맹’ 올인 트럼프 행정부 확장억제 제공 난망

방위비 지렛대 원자력협정 개정 “日수준 핵능력 확보”

영토 문제는 양보 안돼, 中 서해 구조물 비례 대응해야

차기 정부, 美·中에 할 말은 하되 국수주의 경계 필요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가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패싱’ 당하지 않으려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등 우리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글로벌 경제뿐 아니라 안보 정세까지 요동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압박, 주한미군 역할 변경 가능성 등으로 우리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2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코리아 패싱’을 당하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며 “미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적절한 수준에서 들어주면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으로 핵 잠재력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차기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기준은 국익이어야 한다”며 “국익 극대화를 위해 미국·중국 등에 할 말을 하되 국수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올해 2월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마을에 새로운 보안관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관(미국)의 힘은 예전 같지 않다. 1970년대 세계 무역 거래에서 미국 비중은 50% 선이었으나 2020년대 들어 25%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은 1% 미만에서 15%로 급등했다. 미중 간 무역 비중 격차가 10%포인트로 좁혀진 것이다. 미국은 이 정도의 차이도 향후 10년이면 따라잡힐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트럼프주의’는 이런 위기감에서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재정·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를 꺼내 들었는데 글로벌 경제를 넘어 안보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등 동맹국들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기 마을(미국) 주민들의 소비를 축소하고 저축을 늘리기보다는 다른 마을의 창고에 가서 부족한 물건을 가져오고, 안 되면 금고에서 돈을 탈취해오겠다고 한다. 미국은 중국을 주 타깃으로 지목하지만 평소 ‘친구’라고 했던 한국·일본·대만·유럽 등 4개 지역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동맹국들이 자신들을 속여 돈을 훔쳐갔다고 주장한다. 동맹국들이 그동안 미국 경제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새로 얼마나 투자하고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지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인 재정·무역 적자를 축소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국의 국방비 지출 줄이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런 인식에 따라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를 거론하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국방비 지출 확대 등을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협상에서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직거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 보유 주장을 무시하는 듯한 국제사회를 겨냥해 지난해 9월 강선 우라늄 농축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핵 보유국으로서 갖는 국제적 위상과 프리미엄을 누리기 위한 공개 압박 전략이었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면 ‘완전한 비핵화(CVID)’는 물 건너간다. 오직 핵무기를 동결하거나 일부 축소하는 핵군축만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했다. 이후에도 북한과의 협상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관심이 많다. 북핵 협상을 노벨상 수상의 지렛대로 삼으려고 북한과 거래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마무리된 이후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동결과 대북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스몰딜’을 시도해 이를 1단계 비핵화로 포장해서 성공적이라고 내세울 것이다.

-미국의 행보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1997년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크라이나와 한국 등을 ‘중추국가’로 분류했다. ‘낀 나라’라는 의미다. 우크라이나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낀 나라로서 안보 불안이 상존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한국도 해양과 대륙 세력 사이에서 지정학적 취약성을 가진 ‘낀 나라’로 분류된다. 이런 나라들은 비장의 카드가 없으면 언제든지 강대국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불합리한 제안일지라도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더 나은 거래’를 제시하는 장사꾼 기질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외교·안보 카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의 대중 전략 관점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미국이 막대한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을 저지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동북아에서 한미 동맹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도 세련되게 포장해 부각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가진 카드가 많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핵 협상에서 ‘코리아 패싱’을 경계하면서 미국에 줄 것은 주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어내야 한다. 주한미군 방위비 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적절한 수준에서 들어주면서 우리의 핵 잠재력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





-핵 잠재력 확보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거래적 동맹에 올인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확장 억제를 충분히 제공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의 선택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동맹에 요구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가 강해져야 한다. 한국은 세계 5위권의 재래식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핵무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패싱’을 안 당하려면 결국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일본은 1988년 미일원자력협정 개정으로 20% 이하의 우라늄 농축은 물론 그 이상의 농축도 미국이 동의하면 가능하다. 핵연료 사용 후 재처리가 가능해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일본은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비축해 6개월 정도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 잠재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미원자력협정에 막혀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을 확보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북한을 방문한 것을 보면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 같다. 방문 시기는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전승 80주년 기념일인 5월 9일 전후가 유력해 보인다. 김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면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대가로 핵추진 잠수함을 비롯한 첨단 군사 기술 등을 요구할 것이다. 최근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은 상원 군사위에서 북한이 파병 대가로 지대공미사일 등 첨단 방공 장비를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6월 체결된 북러 군사동맹조약에 따라 구소련 해체 이후 34년 만에 러시아 함정이 북한 항구에 입항하는 등 양국의 밀착이 심화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안보에 상당한 위협이다.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으로 대형 철골 구조물을 설치했다.

△중국이 구조물을 설치한 지역을 한반도를 향해 일직선으로 그으면 서해 어청도, 목포, 무안, 평택에 닿게 된다. 평택을 겨냥한 이유는 우리 2함대 사령부가 있고 주한미군의 작전 반경이기 때문이다. 우리 수도권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유사시 주한미군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영토를 지키는 문제에서는 양보하면 안 된다. 국제법적 해결을 시도하는 한편 비례 대응 차원에서 우리도 구조물을 설치해야 한다. 또 PMZ 인근에서 자원 탐사 활동을 적극 벌이면서 우리도 밀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중국에 강하게 심어줘야 한다.

-차기 정부의 바람직한 외교·안보 정책은.

△동북아시아 외교·안보 현안은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중국에는 성(城)안에 불이 나면 성 밖 연못의 물고기도 위태롭다는 뜻을 가진 ‘앙급지어(殃及池魚)’라는 속담이 있다. 특정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인접 지역도 휘말릴 수밖에 없다. 특히 동북아는 군사력이 밀접한 지역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은 주한미군의 이동과 북한군의 도발 등으로 한반도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를 최우선 순위로 높이는 ‘임시국가방어 전략지침’을 배포하고 한국에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 일부를 중동으로 재배치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6·3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차기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기준은 국익이어야 한다.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저자세는 금물이다. 우리가 주권과 영토를 지키려면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면서 주변국에 할 말을 해야 한다. 다만 민족주의 정서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국수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반미’ ‘반중’ 등 국수주의적 감성만으로 국익을 극대화할 수는 없다. 차기 정부는 냉철한 판단으로 동북아 정세를 조망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He is…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영훈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북한 식량 관련 논문으로 응용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 고려대 행정대학원 통일외교학부 교수 등을 지냈다. 한국북방학회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차관급)으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고려대에서 정년 퇴임하고 올 1월부터 숙명여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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