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3일 오후 8시 30분 성북우리아이들병원 앞. 일요일 밤답게 조용한 분위기의 상점가와 달리 차들이 병원 주차장으로 줄줄이 들어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내리자 부모에게 업히거나 쇼파에 누운 채 진료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보호자들로 로비가 북적였다. 모니터에 적힌 대기 환자 수는 31명. 접수처 직원에게 물으니 "오후 7시부터 지금까지 진료를 받고 간 환자만 20여 명에 달한다"며 "통상 자정이 넘어야 대기 인원이 줄고 여유가 생긴다"고 귀띔했다. 돌배기 아들을 품에 안고 대기 중이던 A씨(30대)는 “아이가 3주 전 폐렴으로 입원했는데 또다시 감기 증세를 보여 주말 내내 지켜보다 불안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며 “맞벌이라 오늘 밤을 놓치면 내일 퇴근 후에야 병원에 갈 수 있는데, 늦은 밤뿐 아니라 새벽에도 문여는 병원이 생겨 부모 입장에서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우리아이들의료재단이 이달 1일부터 문을 연 ‘친구클리닉’은 경증 및 중등증 소아 환자를 365일 24시간 진료한다.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인 우리아이들병원(서울 구로구 소재)과 성북우리아이들병원 두 곳에서 운영된다. 대학병원이 아닌 전문병원 급에서 연중무휴로 24시간 진료에 나서는 첫 사례다. 정부가 소아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국 100여 곳의 ‘달빛어린이병원’을 지정해 운영 중이지만 진료 시간은 평일 기준 최대 자정까지였다. 자정을 넘겨 어린 자녀에게 열이 나거나 이상 징후를 보이면 대다수 부모들은 119를 불러야 할지, 다음 날 아침 병원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서민지 친구클리닉 진료과장이 검사 결과를 살펴보고 청진기로 아이의 호흡음을 유심히 들은 뒤 “폐렴으로 진행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하자 일순간 진료실을 감싸던 긴장감이 누그러졌다. 서 과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료실을 나서는 A씨 부부를 향해 “열이 38도 이상 오르거나 '컹컹' 개 짖는 듯한 기침 소리가 나면 다음날 새벽이라도 꼭 다시 오라”고 당부했다. 서 원장은 이튿날 아침 9시까지 환자들을 진료했다. 친구클리닉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운영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물론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이 상주한다. 낮시간과 다름 없이 단순 진료 뿐 아니라 주사·채혈 등 정맥 내 처치, 혈액·소변검사, 엑스레이·초음파·심전도 검사 등 웬만한 검사와 처치가 전부 가능하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병동 당직을 서는 유병근 성북우리아이들병원장까지 전문의 2명을 포함해 총 15명이 근무 중이었다. 보호자들이 작성한 예진표를 살피던 유 원장은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안 떨어지거나 구토, 설사가 멈추질 않아 찾아온 환자들이 대부분"이라며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서울·경기권은 물론 충북 청주, 강원도 원주, 심지어는 전남 광주에서도 소아 환자가 온다"고 말했다. 구로·성북 병원 두 곳의 2주간 누적 진료 환자는 2200명 가까이 된다. 특히 이달 1일 오픈 후 13일까지 토·일요일 평균 방문 환자 수는 각각 118명, 106명으로 월~금 평일에 비해 최대 40명 가량 많았다. 주말에 아플 때 친구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이 더 많은 것이다. 유 원장은 "새벽에 찾아온 소아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면 즉각 연계된 대형병원 응급실로 전원하도록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엄밀히 '응급'은 아닌 '긴급' 상황에서 찾을 수 있는 병원이 새로 생겨 역할을 하다 보니 협력병원은 물론 119구급대원들 사이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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