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비영어권 글로벌 ‘톱 10’ 안에 K콘텐츠가 여섯 작품이나 오른 가운데 ‘국민 드라마’로 떠오른 ‘폭싹 속았수다’를 제치고 2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고 있는 ‘악연’. 2016년 ‘검사외전'으로 97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일형(사진) 감독은 처음 연출한 드라마로 단번에 글로벌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막강한 한류 팬덤을 보유한 톱스타 캐스팅이 아니어도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치밀한 플롯과 구성이 인기 비결이다.
이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글로벌 인기가 얼떨떨하다"며 “청소년관람불가인데다 취향을 따는 등 ‘클릭 진입장벽’이 높아서 그렇지 일단 보기 시작하면 한번에 끝까지 보게 만들었는데 이 전략이 적중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작품이 글로벌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비결은 치밀하고 중독성 있는 플롯과 엔딩이다. 영화 감독 출신이기에 드라마 문법이 낯설지 않았냐고 하자 ‘프리즌 브레이크’를 비롯해 ‘위기의 주부들’ ‘24’를 잠을 쪼개가면서 본 ‘미드 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6개의 에피소드를 극장에서 보듯 한번에 볼 수 있게 포커스를 맞췄다”며 “'미드'처럼 6시간 동안 몰입해서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동명의 카카오웹툰이 원작인 이 작품은 ‘사채남’이 아버지를 살인을 청부하면서 전개되는데 이후 ‘사채남’을 비롯해 6명의 남녀의 얽히고설킨 악연의 퍼즐이 맞춰지는 과정에서 받은 충격의 여운이 쉽게 가라 앉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작이 있지만 악연의 시작과 충격적인 반전 등 이 작품의 백미는 모두 이 감독의 아이디어다. 악연의 연결고리와 에피소드, 캐릭터를 각 회의 오프닝과 엔딩에 맞춰 다음 회를 꼭 보게 만든 이 감독의 독창적이고 영리한 스토리텔링 솜씨와 연출력은 독보적이다. 그는 “오프닝과 엔딩을 정해 놓고 다음 회를 썼다”며 “악연의 시작이자 인물들의 연결고리가 보여지며 이야기가 풀리는 5회는 가장 어려웠다. 어떻게 떡밥’을 던져야 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해서, 몇 번을 다시 썼다”고 전했다.
패륜아 ‘사채남’ 등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과 표현도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웹툰과 비슷하지만 골 때리는 캐릭터를 극대화하기 위해 에피소드를 추가했다. 이를테면 ‘사채남’이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자 합의금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아버지 몰래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작업을 하고, ‘목격남’은 ‘안경남'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돈을 뜯어낸다. 이러한 디테일들이 모여서 몰입도 높은 캐릭터가 탄생했는데, 유튜브를 비롯해 뉴스 등을 통해 사기 수법 등을 취재했다고 한다. 그는 “큰 돈을 뜯어 낼 때는 한번에 달라고 하지 않는다”며 “보이스 피싱 사례를 보면 조금씩 조금씩 돈을 뜯어내고 주는 사람도 두 번 세 번 주다보면 헤어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각 에피소드의 오프닝과 엔딩을 맞추듯 1회와 6회에 등장하는 사채업자(조진웅 분)도 잠시 등장함에도 끝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존재감이 막강하다. 이 감독은 “시작과 끝에서 분위기를 잡아주고 마무리를 하는 누구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드라마를 6시간 보는데 잔상이 강하게 남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날 인물이라서 대중에게 알려진 강렬한 조진웅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진웅은 극의 처음과 끝에 등장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만들기도 하고 흡사 저승사자와도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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