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일하고 시골에서 쉽니다” 일주일 중 5일을 도시에서 생활하고 나머지 이틀을 시골에서 보내는 ‘5도 2촌’의 라이프스타일이 국내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골에서 회복하고, 다시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이는 경제 및 사회 활동의 거점이 되는 도시를 떠날 수 없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인기다. 완전한 귀농, 귀촌을 택하는 것은 삶의 터전이 아예 바뀐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크다. 그리고 막상 시골살이를 시작했을 때 그 환경이 자신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5도 2촌은 상대적인 위험성과 부담은 덜고, 새로운 삶의 방식도 경험해볼 수 있는 절충안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모듈러 건축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모듈러 건축은 건축물의 각 부분을 공장에서 미리 생산한 후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 및 설치하는 공법을 일컫는다. 공사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그리고 주문자의 생활 패턴과 사용 목적에 맞춤형으로 제작될 수 있다는 점이 5도 2촌족들의 세컨드 하우스로 특히 부합한다.
실제로 국내 모듈러 건축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와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유관 시장 규모가 2022년 1,757억 원에서 2023년에 8,000억 원을 돌파했고 오는 2030년에는 2조 원까지도 확장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갈수록 몸집이 커지는 모듈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먼저,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2023년부터 현대제철과 기술협의체를 구성해 모듈러 건축에 대한 연구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관련 기술을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베드 ‘H-모듈러 랩’도 구축해 설계부터 제작, 운송, 설치까지 모듈러 건축 전 과정을 실증하고 있다. GS건설의 경우 2020년 폴란드의 목조 모듈러 전문업체 ‘단우드(Danwood S.A)’와 영국 철골 모듈러 전문기업 ‘엘리먼츠(Elements Europe Ltd.)’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시장도 겨냥하고 있다. LG전자는 작년 4분기부터 모듈러 건축 ‘스마트코티지’를 상업화하면서 자사의 AI 가전과 IoT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 맞춤형 AI 홈 솔루션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북유럽 국가 에스토니아가 단연 눈에 띈다. 국토의 51%가 산림으로 이루어진 에스토니아는 풍부한 목재 자원을 보유함은 물론 이를 보존하고 최적화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전문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유럽 내 가장 많은 인증을 받은 목조 건축 생산 국가로 유관 산업 연간 수출액은 30억 유로 수준이다. 2023년 기준으로 유럽연합 내 목조 모듈러 건축물의 22.3%를 수출하면서 조립식 목조 건축 분야에서 유럽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에스토니아는 2010년부터 유럽 최대 규모의 목조 모듈러 주택 수출국으로 전체 생산량의 95%를 수출하고 있다. 2023년의 수출액은 약 5억 4천만 유로(약 8,775억 원)에 달한다.
에스토니아의 목조 모듈러 건축이 주목받는 이유로는 친환경 및 지속가능성에 갖는 강점이 손꼽힌다. 콘크리트 대신 목재를 사용할 시 건물 유형에 따라 탄소 배출량을 40%에서 최대 77%까지 줄일 수 있고, 모듈러 설계 시 자재 낭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예방할 수 있다. 리노베이션을 할 때도 최대 60%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으며 빠른 조립 공정을 통해 프로젝트 일정 최대 50% 단축 및 비용 절감에도 효용이 뛰어나다.
에스토니아의 기업들이 국내 최대 건설·건축 전시회 ‘코리아빌드위크(KOREA BUILD WEEK)’ 등의 단골이자 주목할 만한 참가자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한국의 기업들도 에스토니아 기업들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23년 에스토니아의 최대 모듈식 건물 제조업체 ‘하르멧(Harmet)’이 삼성물산과 MOU를 채결했다. 하르멧의 알로 탐(Alo Tamm) CEO는 “하르멧은 목재 그리고 목재와 철강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듈러 건축 분야에 있어서 한국과 에스토니아 양국 간 협력에 막대한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물산과의 MOU는 매우 고무적인 첫 걸음이었으며, 에스토니아의 지속 가능한 건축 전문성과 한국의 기술 혁신 간 시너지가 업계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애니카 카다야 우드하우스 에스토니아 대표는 “목재는 순환형 건축을 가능케 하고 친환경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며, 첨단화된 건축 시스템의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럽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 목표들의 달성을 위한 교집합이 되고 있다. 따라서 목재는 지속가능한 선택일 뿐만 아니라 스마트하면서도 전략적인 선택이다”라며 “또한 모듈러 건축 기술은 확장에 용이하면서도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해 주택 공급 부족 등의 건축 위기에 대응함과 동시에 생태발자국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현재 우리는 건축물이 해체, 재사용 및 자재 회수를 염두에 둔 상태로 설계되는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있기에, 이러한 순환형 미래를 실현하는 핵심 요소는 바로 목재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연하고 지속가능한 주거 솔루션에 대한 증가하는 수요를 감안하면, 현재 성장 중인 국내 모듈러 시장과 에스토니아의 친환경 목조 건축 기술의 융합에 기대가 커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양국 간의 협력을 단순한 비즈니스 기회를 넘어 혁신과 지속가능성의 전략적 결합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기술 중심 접근법과 에스토니아의 목재 분야에 대한 깊은 전문성이 더해진 파트너십은 앞으로 전 세계 건설 산업에 스마트하고 친환경적이며 회복력 있는 주거를 제시하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에스토니아의 목조 모듈러 건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관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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