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윤중로를 화사하게 밝힌 벚꽃을 감상하다 문득 괴담 아닌 괴담을 떠올리고 말았다. 벚꽃이 피는, 혹은 지는 순서대로 지역 대학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이다. 벚꽃의 정취에 흠뻑 빠지다가도 이따금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슈다.
지역 소멸은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선결할 과제다. 지역 소멸이 곧 대한민국 소멸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수도권 정도를 제외하면 전국 각지는 청년들이 나고 자란 터전을 빠져나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 농어촌이건 대도시이건 정도 차만 있을 뿐 예외 없는 현상이다. 청년들의 빈자리를 노년층이 채웠지만 수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활기 잃은 지역은 지속 가능성을 얘기하기에 힘에 많이 부친다.
그렇다고 수도권을 선택한 청년들의 미래가 마냥 낙관적인 것도 아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푼돈과 맞바꾼 열정이 어느새 소진되다 보면, 결혼이나 자녀 양육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된다. 저출생과도 연결되는 이유다.
역대 정부라고 이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 특히 노무현 참여정부는 여러 저항을 뚫고 공공기관 지역 이전과 혁신도시 정책을 적극 펼쳤다. 뒤를 이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도 균형발전 이슈를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공한 사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단편적·분산적 정책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국토균형발전은 지역에 선심 쓰듯 공공기관 몇 개 내려보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확고한 비전 아래 명확한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종합적·체계적·중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은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에너지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재원은 재원대로 효율적으로 쓰이지 못했다.
각종 균형발전 사업이 추진되던 와중에도 수도권 중심 정책을 내려놓지 않은 점도 문제다. 서울 중심의 경제·사회·문화적 자원 집중이 지속되다 보니 지역으로 옮긴 공기관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결되지 못했다. 기관과 시설만 이전했을 뿐 주거·보육·교육·일자리·문화·교통·의료 인프라 등이 수도권보다 열악한데 어떤 청년들이 매력을 느끼겠나.
서울 못지않은 도시를 지역마다 들어서게 해야 한다. 2월 산업연구원이 낸 보고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균형발전 불평등도의 구조적 특성과 정책 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수도권·비수도권 간 격차 확대의 불균형은 특히 인재·산업·기업 등 실물경제의 자립 역량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지역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미래형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각 지역의 거점도시마다 역내 주력 산업과 연관성이 강한 첨단산업을 배치하고, 지역 대학과의 산학 연관 연계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면서 교통·의료·문화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지역 내 취업과 정착을 촉진하는 발상이 필요하다. 서울에 견줄 만한 도시가 각 지역에서 대한민국의 성장 거점으로 역할을 하게 되면 지역은 지역대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대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광주를 거점으로 대한민국 인공지능(AI) 산업을 키우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국가균형발전은 단순한 분산이 아니다. 서울 못지않은 새로운 성장 거점을 만드는 국가적 대전략으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래야 지역도 살고 대한민국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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