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 규모의 ‘블랙호크’(UH/HH-60) 성능개량사업 입찰 마감날인 지난 3월 25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대한항공 두 업체만 입찰 제안서를 제출해 양강 구도가 짜여졌다. KAI는 블랙호크 원제작사 시콜스키를 비롯해 이스라엘 방산업체 엘빗 시스템즈, 한화시스템 등과 한팀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대한항공 역시 미국의 항공우주기업 콜린스와 LIG넥스원 등과 손잡고 컨소시엄을 꾸렸다.
1990년대에 도입돼 노후화된 블랙호크의 기체 구조 개량과 항공전자 시스템 디지털화는 물론 독자 공중침투작전 능력까지 확보하는 사업으로, 사업 기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7년이다.
우리 군은 UH/HH-60 두 기종 15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성능개량사업 대상 기체 수는 36대다. 특전사용 24대와 공군 전투탐색구조용 12대만 개량한다. 나머지 100여 대는 운용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대로 사용한 현재 사업이 준비 중인 ‘차세대 고속 중형기동헬기’로 대체될 계획이다.
이번 사업에는 총 9613억 원이 투입된다. 방사청은 제안서 실사 등을 거쳐 이르면 4월 29일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다만 두 업체 가운데 제안서 평가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의문이 있을 경우 디브리핑(Debriefing)을 요청할 수 있어 최종 확정까지 10일 정도 지연될 수 있다. 디브리핑 제도는 제안서 평가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고, 제안업체의 강점과 약점을 알려 업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2019년부터 시행됐다.
방사청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단순한 기술적 업그레이드에 그치지 않고 기존 특수작전용 중형 헬기 대비 독자적인 공중침투작전 능력 확보 등 군 전력의 현대화는 물론 방산업체의 일자리 창출 및 방산육성,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목표를 두고 있다”며 “특히 국내 방산 분야의 헬기 사업 역량이 더 강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춰 최종사업자가 선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호크는 공중 전투에서부터 병력 수송 등 여러 작전에 투입되는 우리 군의 핵심 전력이다. 지난해 12·3 계엄사태 당시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무장 병력이 이 헬기를 타고 국회 경내에 진입해 유명해졌다.
주목할 대목은 이번 사업에서 육군 특수작전용과 공군 전투탐색구조용에 쓰이는 일부 물량부터 우선적으로 성능개량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기술적 업그레이드에 그치지 않고 기존 특수작전용 중형 헬기와 별도로 독자적인 공중침투작전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업체가 최우선적으로 선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까닭에 업계에서는 블랙호크 원제작자인 시콜스키와 손잡고 한국산 기동헬기 ‘수리온’과 ‘미르온’ 등을 설계·제작한 경험을 통해 설계 해석와 제작, 시험 등 헬기 분야 기술력에서 강점을 보유한 KAI가 한발 앞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KAI는 2006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ADD) 등과 국산 헬기 개발을 시작해 2010년 처음으로 국산 헬기를 생산한 덕분에 헬기를 자체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체가 설계에 따라 제작됐는지를 확인하는 감항인증 능력을 갖춘 것이 최대 강점이다.
무엇보다 블랙호크 기체 설계수명은 8000시간(운용시간 기준)인데 성능개량 대상 블랙호크의 운용시간은 5000∼7500시간으로 기체수명 한도에 근접한 헬기가 많아 감항인증 통과를 위해선 수명 연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에 없는 감항인증 능력과 원제작자인 시콜스키와 손잡고 이 부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는 KAI가 경쟁 우위에 있다는 관측이 많다.
대한항공은 항공전자시스템 분야는 한화시스템과, 디지털 조종석 개발 등 개조개발 및 항전체계 분야는 이스라엘 엘빗 시스템즈와 협업해 성능개량사업 완성도도 높일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블랙호크 헬기를 직접 면허생산한 경험이 장점이다. 원제작사인 시콜스키로부터 생산 기술을 이전받아 1990년부터 블랙호크를 제작해왔다. 현재까지 총 138대의 헬기를 면허생산해 군에 납품했다.덕분에 UH-60의 제작과 개조, 창정비를 꾸준히 수행하며 정비에 필요한 전문성을 갖췄다.
특히 대한항공은 이번 사업 목적인 특수작전 성능 개량을 위해 미 특수작전 헬기에 특화 개발된 검증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특수작전 헬기 조정실 시스템(항법 체계 및 조종석) 개량 능력을 보유한 미국의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국내 생존체계와 항전장비 개발 전문기업 LIG넥스원과 함께 팀을 꾸렸다.
눈 여겨 볼게 기존 UH/HH-60의 아날로그 계기판은 비행 중 조종사의 업무 부담을 높이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콜린스 에어로스페이스 지원을 받아 디지털 조종실로 바꾼다면 조종사의 부담은 줄고, 운영효율성 증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대한항공이 KAI 보다 앞서 경쟁력은 그나마 UH-60 전용 시설과 기술자료, 특화장비 등을 갖춰 성능개량과 창정비를 동시에 수행한 경험으로 기동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산업계에서는 이번 사업 수주의 관건은 원제작사 시콜스키 지원과 감항인증 능력 등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성능개량 대상 블랙호크의 운용시간은 평균 5000시간이 넘는다. 기체수명 한도에 근접해 성능개량 사업의 리스크를 줄이고 감항인증을 통과할 능력을 갖춘 업체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런 점에서 KAI는 고정익 및 회전익 항공기에 대한 국내 최다 감항인증 실적과 전담 조직을 운영하고, 사업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시콜스키와 기술협력도 맺고 전문 인력과 기술지원을 통해 사업 진행 과정에서 발생할 변수를 최소화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강점은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평가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블랙호크 성능개량사업에 창정비만 포함돼 있는 까닭에 성능개량 후 오래 운용하기 위한 수명 연장 부문에 강점이 있고 원제작사인 시콜스키와 손잡아 기술지원을 받을 수 있는 KAI가 방사청 내부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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