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명일동 땅 꺼짐사고 등 도심 싱크홀에 대한 우려가 커졌지만, 정부의 선제적 예방 대책은 여전히 속도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지반침하 위험 예측 등을 위해 지하공간 통합안전체계 구축에 나섰는데 사고방지를 위한 통합지도는 건설현장에서 활용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하정보통합지도에 대한 정확도를 높이고 제작·활용을 전담할 관리기관을 일원화해 위험도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30일 국토교통부와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2085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싱크홀이 발생한 원인은 상하수관 노후화로 인한 손상이 최근 3년간 24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다짐불량(92건), 굴착공사(55건), 기타 매설물 손상(37건) 순이었다. 싱크홀은 지반 깊숙한 곳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 위험요소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2014년 싱크홀에 대한 선제적 예방을 위해 범정부 민관합동 특별팀을 꾸려 ‘지하공간 통합지도’ 구축 등을 준비했다. 이후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2016년 국회를 통과했고, 한국국토정보공사가 가스·상하수도·통신 등 16종 정보를 3차원 입체지도로 구축했다.
문제는 이처럼 완성된 지도에 대한 활용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측이 아닌 기존의 종이도면을 기초로 구축한 데이터가 절반에 달하기 때문이다. LX 관계자는 “지하시설물 측량과 탐사를 통한 지하정보 데이터 구축이 뒤늦게 법제화된 측면이 크다”며 “종이 도면을 디지털화하여 구축한 데이터가 50%에 달해 정확도 개선을 위한 고도화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서민송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은 “실측률을 높이게 되면 지하시설물 3차원 위치정확도가 정밀해진다”며 “굴착공사 수행 시 지하시설물에 대한 위치정보 오탐률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보안 규정으로 인해 사용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지하시설물 정보는 국토교통부 국가공간정보보안관리 규정 등에 따라 민간 사업자가 요청하면 이를 검토한 뒤 종이도면으로 제공하게 돼 있다. 이 같은 불편함이 현장 활용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서 연구원은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데이터 형태로 제공하려면 보안솔루션을 도입해야 한다”며 “현재 정부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하공간통합지도의 제작·활용을 전담할 조직이 분산된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재 3차원 입체지도를 구축하는 업무는 LX, 이를 활용 지원하는 역할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안전사고 예방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국토안전관리원이 각각 맡고 있다. 통합지도의 제작과 활용, 관리가 각각 분산되다 보니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효상 신한대 토지행정학과 교수는“마치 여러 명의 의사가 환자의 각기 다른 부위만 진료하면서 종합적인 진단은 내리지 않는 상황과 같다”며 “시설물별로 관리 주체가 다르고 전담팀이 없다 보니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않고, 하나의 문제가 다른 시설물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통합지도 구축을 위한 예산 확대도 필요하다는 평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첨단장비인 지하투과레이더(GPR)을 활용한 정밀 탐사와 전문인력 확충 등을 통해 지하정보 고도화를 해야 싱크홀 발생을 줄일 수 있다”며 “하지만 관련 예산이 적기에 수립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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