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역대 최고 속도로 맹렬히 번지는 가운데 산림청이 영남 지역에 설치했던 산불감시카메라 대수가 10년째 그대로였고 특히 전문가들이 수차례 산불 위험성을 경고했던 의성군에는 애초에 단 한대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산불 초동 대처에 핵심적인 ‘조기 탐지’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8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남부지방산림청(이하 남부청) 산하 국유림관리소 6곳이 운영하고 있는 산불무인감시카메라는 지난해 기준 총 43대다. 기종별로 보면 등산로 출입지에 설치해 소각행위 등을 단속하는 ‘밀착형’ 카메라가 11대, 산 정상 부근에 설치해 광역 감시를 하는 ‘조망형’ 카메라가 32대다. 이는 2015년 당시 공개한 설치 현황과 똑같은 수치로 10년간 추가 증설이 전무했다는 의미다. 가장 오래된 감시카메라는 영덕군 국사당산에 2000년에 설치된 것으로 무려 25년이나 됐다.
남부산림청은 영남 지방 산하 31개 시·군을 담당하는데 이중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13개 시·군 뿐이며 의성군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나마 의성군청 차원에서 직접 운영하는 감시카메라가 14대 있었지만 이번 산불로 모두 전소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의성군이 설치 지원 지역에서 배제된 이유와 관련해 “산림 지방청 산하의 각 국유림관리소에서 지자체를 대상으로 감시카메라 설치 수요 조사를 진행한 뒤 예산을 고려해 우선 순위별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20여년 전부터 의성군이 침엽수림이 많고 강수량이 적어 대형 산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해왔다. 2005년 한국지리정보학회지에 게재된 ‘의성군지역 산불 발생 및 대형화 위험지역 구분’ 논문에서 산불 대형화 위험지역으로 지목된 곳은 이번 화재에서 산불이 번진 지역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에 정부의 산불 위험 관리 및 관련 예산 배정 방식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나마 있는 산불감시카메라들도 모두 노후화했고 자동감지 기능도 없다시피한 탓에 화재 조기 발견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남부산림청은 지난해 10월 기존 조망형 산불감시카메라 32대에 산불예방 정보통신기술(ICT) 플랫폼을 접목하며 기능을 향상시켰지만 최근까지 이를 통해 접수된 신고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목적은 실시간 영상을 관측하는 인공지능(AI)이 곧바로 연기를 감지하고 산불담당 공무원에게 알림 메시지를 발송해 즉각적인 대처에 나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남부산림청 관계자는 “실제 산불 탐지는 없고 오류 탐지가 많았다"면서 "설치 업체 측에서는 시간이 누적돼야 데이터가 쌓이면서 오류 탐지 건수가 줄어든다더라”고 설명하고 “때문에 이전처럼 근무시간에 한정해 직원들이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다”고 밝혔다. 결국 초동대처의 99%는 산불지휘권이 있는 산림청이 아닌 119 신고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괴물 산불’이 휩쓸고 있는 영남 지역뿐만 아니라 추후 전국적으로 산불감시카메라를 비롯한 조기 화재 탐지 체계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감시원 등 관련 인력이 있지만, 광범위한 구역을 사람이 24시간 돌아다니면서 감시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카메라·드론 등 탐지 정확성이 높은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미리 감지하면 초동 대처가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재 자동 감지 시스템이 장착된 제품을 예산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도입할 필요성도 있다. 산불은 초기에 몇 초라도 빨리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관건은 초동 대처와 관련해 얼마나 충분한 예산을 배정하느냐다. 이날 동부산림청의 한 관계자는 “사실 현재 (감시카메라 관련) 예산으로는 증설은커녕 기존 설치물을 유지·보수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밝혔으며 북부산림청 관계자 역시 “감시카메라가 해발고도가 높은 산 정상 부근에 설치되다보니 기후적 환경이 열악해서 쉽게 고장나 관리가 어렵지만, 증설된다면 감시 구역이 넓어지는 거니까 긍정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감지카메라가 현재 활용성이 낮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산불감시원들이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있기 때문에 감시원 안전에 크나큰 도움을 준다.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설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7일 오후 10시 기준 산불로 인한 인명 피해는 사망 28명, 부상 32명 등 총 60명으로 집계돼 산림청 통계상 산불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 1989년(26명)을 넘어섰다. 사망자 중에는 진화 작업을 돕던 60대 산불감시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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