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패트릭 샌더스 당시 영국 육군 참모총장이 영국에서 열린 국제 장갑차 엑스포에 참석해 “러시아 같은 나라와 전쟁할 경우 현재 7만 5000명 수준인 영국 육군 병력으로는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전쟁 승리를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 전시 상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로프 바우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사위원장도 “민간인들은 앞으로 20년 동안 러시아와 전면전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냉전 시대 유럽에는 전쟁·재난에 대처하려면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방어력을 갖춰야 한다는 민방위(civil defense) 개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유럽 각국은 핵 대피소를 만들어 물자를 비축하고 정례적으로 민방위대원 훈련을 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자 안보 위기 불감증이 확산하면서 민방위 시스템도 느슨해졌다. 냉전 종식 후 풀어졌던 유럽의 민방위 제도는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다시 강화됐다. 영국·독일·프랑스 등은 외부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민방위 관련 법률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거나 새로 제정했다. 연방·지방 정부로 이원화됐던 민방위 체계도 연방 정부로 일원화했다.
유럽의 민방위 시스템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격상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6일 전쟁 등 위기 상황에 통합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범유럽 차원의 ‘위기 대비 연합 전략’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며 평시 대비 체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회원국들의 우려를 반영해 만들어진 전략에는 민군 협력 강화를 목표로 EU 전역에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정기적 대비 훈련을 실시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유럽판 민방위훈련’을 실시하는 셈이다. EU는 “나라별 훈련은 이미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회원국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우리도 주권과 영토, 평화를 지키려면 민관군이 힘을 모아야 한다. 군은 첨단 군사력 확보와 실전 연습 반복 등으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주 국방력을 키우고 국민들도 민군 협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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