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소비자와 기업들의 경제 심리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미국의 마지막 경기 침체였던 팬데믹 당시 수준으로 경제 심리가 쪼그라들면서 둔화와 침체의 경계선으로 밀어넣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을 역임한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에 ‘리세션룰렛(침체를 건 러시안 룰렛)’을 하고 있다”며 “이제 경제는 침체가 될 수도, 스태그플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5일(현지 시간) 컨퍼런스보드에 따르면 3월 소비자신뢰지수는 전월보다 7.2포인트 하락한 92.9를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 당시였던 2021년 1월 이후 4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집계치는 93.5였지만 이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미래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더욱 큰 폭으로 하락했다. 6개월 후 경제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기대지수는 전월 74.8에서 65.2로 떨어졌다. 2013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통상 미래 지수가 80 아래일 경우 침체를 예고하는 경향이 있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규제 완화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2023년 7월 이후 16개월 만에 최고치(112.8)를 기록한 바 있다. 이후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물가와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소비자 심리는 3개월 만에 급랭했다.
심리 위축은 투자와 소비를 줄여 경제에 빨간불이다. 블라이더 교수는 “불확실성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고용과 투자 결정을 내리는 기업에서 더 크다”며 “기다릴 수록 수요와 공급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블라인더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량 연방 직원 해고, 이민정책과 관세 불안 등과 맞물려 침체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그는 “1년 내 경기 침체가 시작될 가능성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는 현재 50~60%이며 이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일 당시 올해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나의 평가는 ‘제로’에 가까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미국 경제를 바닥으로 몰고 가려는 듯 보인다”며 “(만약 침체가 온다면) 이것은 진정한 트럼프침체(Trumpcession)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최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기존 1.8%에서 1.2%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잠재성장률(약 1.8%) 보다 낮고, 연준의 새로운 전망치 1.7% 보다 낮다. 기업과 소비자의 심리 위축에 따른 실제 투자와 소비 둔화를 반영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특히 올 1분기 성장률은 기존 1.5%에서 0.4%로, 2분기는 2.0%에서 0.9%로 낮췄다. 앨리자 윙어 이코노미스트는 “무역 정책의 명확성 부족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 추세는 소비자와 기업들의 자신감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이 경제 부양요인으로, 기업가들은 두 요인 사이에서 관망 모드에 있다”고 말했다.
침체를 피하기 위해 관세 불확실성을 조절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맨해튼 연구소의 앨리슨 슈라거 수석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의 주장만큼 좋지는 않지만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것 만큼 나쁜 것도 아니다”라며 “미국 경제는 서비스 비중이 높기 때문에 관세의 영향이 우려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는 예측가능성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슈라거 연구원은 “아무도 그것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다”며 “정부는 체계적이고 더 예측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소비자와 기업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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