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튀르키예의 ‘스트롱맨(강경 지도자)’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사법 독립을 훼손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강수를 잇따라 두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자신을 겨냥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사법기구 수장들을 잇따라 해임하고 있으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유력 대선 주자를 구금해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스라엘 내각은 23일(현지시간) 갈리 바하라브-미아라 검찰총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하며 사실상 해임 절차에 돌입했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총장 축출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야리브 레빈 법무부 장관은 “총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해임 사유로 들었지만, 바하라브-미아라는 “정부가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리고 법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바하라브-미아라 총장은 네타냐후 총리와 사법 개혁을 포함한 정책을 놓고 줄곧 충돌을 빚어왔다. 특히 이스라엘 내각이 지난 20일 국내 정보기관 로넨 바르 국장을 해임하기로 결정하면서 양 측은 더욱 격렬하게 부딪쳤다.
바하라브-미아라 총장은 신베트가 네타냐후 총리 측근들이 카타르에서 거액의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와중에 바르 국장을 해임해서는 안 된다며 내각을 비판해왔다.
로이터는 검찰총장 해임 추진이 6일째 이어지고 있는 대규모 시위를 무시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최근 이스라엘에서는 네타냐후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이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로 현재까지 약 10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로이터에 "우리는 네타냐후가 집에 가기 전까지 시위할 것"이라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모든 인질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네타냐후의 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내각이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재개한 것도, 이같은 정치적 불안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계산이 깔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네타냐후 총리는 뇌물 수수와 사기, 배임 등 부패 혐의로 2020년부터 재판을 받아왔으며, 이번 전쟁 재개 역시 재판 진행을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18일, 이스라엘 재판부는 전쟁을 이유로 재판 출석 일정을 연기해 달라는 네타냐후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튀르키예에서도 정적 제거를 향한 권력의 칼날이 정조준됐다. 이날 튀르키예 법원은 이스탄불 시장이자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에크렘 이마모을루의 구금 연장을 결정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범죄조직 운영, 뇌물 수수, 입찰 조작 등의 혐의로 기소돼 수사를 받고 있다. 내무부는 즉각 그의 시장 직무를 정지시킴과 동시에 동시에 구청장 2명과 보좌관 등 47명을 추가로 수감시켰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위해 향후 위협이 될 이마모을루 시장을 대선판에서 미리 제거하려는 정치적 시도로 해석된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2019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 후보를 크게 꺾으며 야권의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이 구금됐다는 소식에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등 주요 도시에서는 10년 만에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환까지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다. 당국은 시위 참가자 300여 명을 체포했으며, 곳곳에서 경찰과 시민 간 충돌이 발생했다.
유럽연합(EU) 의회는 이마모을루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고, 독일 정부는 “정치 경쟁은 법정이 아니라 선거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튀르키예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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