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에서 만난 통화정책 전문가 A 씨에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경제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어찌됐든 제로금리 시대는 끝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는 “지금 상황이라면 누구도 모른다. 예상 외로 제로금리 시대가 또 올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제로금리는 끝났다는 보편적 인식을 깨는 전망이다. A 씨의 발언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그간의 큰 추세를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인식이 묻어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주 기자회견 중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표현을 16번이나 썼다. 파월 의장의 경제 인식이 비관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기업과 소비자 심리 지표에서 불안감이 감지되지만 다른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경제는 여전히 견조하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은 무엇보다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단 한 번의 가격 상승에 그치는 것이 “기본 전망(base case)”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는 관세 영향과 일치한다. 신뢰가 생명인 중앙은행장이 굳이 트럼프 행정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경제 영향에 대해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파월의 예측대로라면 경제는 침체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관세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연준은 기준금리를 계속 인하할 수 있다. 금리가 낮아진다면 주식시장은 더 오를 여지가 있고 이는 ‘부의 효과’ 지속으로 연결돼 미국 중산층과 부자들이 계속 소비를 이어갈 동력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경제도 바로 이런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런데도 파월 의장은 왜 16번이나 불확실성을 외쳤을까. 무엇보다 관세정책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보복할수록 관세의 충격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며칠 전 “미국이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첫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한다.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0.5%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인플레이션은 같은 비율로 높아진다. 이런 구조는 미국에도 적용돼 상대국이 보복관세에 적극적일수록, 보복에 나서는 나라가 많을수록 성장률과 물가의 부담은 커지게 된다. 만약 미국이 재보복까지 감행한다면 파월 의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기대하는 시나리오는 어려울 수 있다.
현재 유럽과 중국·캐나다·멕시코 등 미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들은 모두 보복 카드를 쥐고 있다. 유럽이 최근 위스키 등 1단계 보복 시행을 유예했지만 발효 가능성은 남아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유럽 패싱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백악관 충돌 등은 유럽 내 자강론의 불을 지폈다. 캐나다 국민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미국의 51번째 주’ 발언으로 감정이 좋지 않다.
이러한 제반 환경은 유럽과 캐나다 지도자들이 관세 협상을 경제 논리로 풀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동한다. 올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유럽의 한 정치경제학자는 “최근 유럽에서 극우 정권이 탄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경제가 아니라 이민과 같은 문화적 요인”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기축통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화 분야의 석학인 배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대 교수는 동맹국들이 미국에 등을 돌린다면 이들이 보유하는 달러 비축자산도 감소할 것이라고 봤다. 앞으로의 미래가 고금리일지, 제로금리일지 알 수 없다는 A 씨의 말이 떠오른다.
4월 2일 미국은 상호관세 세부 내용을 발표한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걷히고 정책의 타당성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공은 세계 각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트럼프발 관세 사정권에 놓인 한국 역시 길어지는 국정 공백 속에 어떤 전략을 갖고 대응에 나설지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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