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DOE)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 종료 직전 한국을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에 추가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외교부가 “협의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함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국내의 정치적 혼란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바이든 정부가 한국을 SCL에 추가한 올 1월은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조치 및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등 정치적 격변이 발생한 직후”라며 “한국은 당시에도, 현재도 심각한 ‘지역 불안정’을 겪는 중이라는 점에서 SCL에 포함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미국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수차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의 핵무장 여론을 SCL 추가 사유로 거론하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2023년 1월 업무보고에서 “북핵 문제가 더 심해지면 전술핵 배치를 하거나 우리 스스로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같은 해 4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틀 후에는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1년 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주체가 된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이 미국의 불안을 증폭시켰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줄곧 한미 동맹을 강조해온 바이든 정부지만 한국 내부의 핵무장 여론이 조금씩 고조되면서 SCL 추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는 “SCL은 실무자 차원에서 일정한 기준대로 작성하는 리스트로 보이며 이는 핵 문제 같은 양자 사안과는 관계가 없다”며 “SCL이 오히려 국내의 핵무장 찬반 갈등에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재무부의 환율 조작국 및 환율 조작 관찰 대상국 지정이 실질적 제재로 이어지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처럼 SCL에도 과민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DOE 역시 SCL에 대해 “미국과 적대적 관계인 국가만이 SCL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며 SCL 국가들과 미국은 에너지, 과학, 기술, 테러 방지, 핵 비확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기적으로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CL에 포함됐다고 해서 미국인이나 DOE 직원이 해당 국가를 방문하거나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마찬가지로 해당 국가 국민이 DOE를 방문하는 것도 금지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문과 협력은 사전에 내부 검토를 거친다”고도 덧붙였다. SCL에는 우리나라처럼 미국의 우방인 인도·사우디아라비아·대만 등도 포함돼 있으며 SCL로 인해 미국과의 협력이 구체적으로 제한된 사례는 알려진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화기애애한 정상회담에서 원자로·반도체·바이오·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강화를 약속하기도 했다.
다만 자국 이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는 예상하기 어렵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지적재산권 분쟁이 종결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외교부는 “한미 간 에너지·과학기술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적극 교섭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SCL의 업데이트가 확정되는 4월 15일까지 DOE를 움직이기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외교부는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미국 에너지부 및 정부 기관들과 이번 사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