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모(76·여)씨는 몇년 전부터 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저린 감이 심해 걷는 것조차 어려워지자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흉추 10~12번 부위의 황색인대골화증(ossification of the yellow ligament)으로 인한 흉부 척수병증(thoracic myelopathy)이란 진단과 함께 수술을 권했다. 황색인대골화증은 척추를 지지하는 황색 인대가 비정상적으로 딱딱하게 변하면서 뼈처럼 굳어지는 현상이다. 그로 인해 척수가 눌리면서 다리 힘이 약해지거나 감각이 둔해질 수 있다. 심한 경우 문씨처럼 걸음걸이에도 문제가 생긴다. 문씨는 나이가 걸려 주저한 끝에 척추수술을 받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데 한 달 가까이 되도록 다리가 뻣뻣하고 아파 혼자서는 걸을 엄두도 나지 않은 탓이다. 수술 이후 근육이 빠지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데다 막상 일어서려고 하면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런데 박중현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의 권유로 ‘로봇 보조 보행 재활(Robot-Assisted Gait Training)’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몸의 2~3배쯤 돼 보이는 로봇을 입고 걸어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문씨가 훈련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리치료사의 도움으로 재활 로봇을 착용하니 오히려 몸을 안전하게 지탱해주는 느낌이 들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자신감이 붙었다. 총 5회로 구성된 로봇 보조 보행 훈련의 4회차 세션을 마친 문씨는 “(로봇을 이용하니) 뭔가가 잡아주는 것 같다”며 “자신감이 생기니 겁도 덜 난다”고 웃어보였다.
◇ 큰 맘 먹고 척수수술 받아도 ‘통증·경직’ 호소…넘어질까 걷는 것도 공포
척추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대부분 수술 부위 통증과 경직, 근력 저하에 따른 활동 능력 감소를 호소한다. 재활운동 치료는 이러한 환자들이 빠르게 회복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과정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을 포함해 운동 치료 효과를 높이는 다양한 보조 장비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로봇 보조 보행 훈련은 로봇을 이용해 정상적인 보행 패턴을 유도 및 훈련하는 치료다. 급성기 뇌졸중 등 중추신경계 질환자나 사지절단자 등에 한해 선별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는 2022년부터 정형외과·신경외과 등과 협력해 자체 개발한 로봇 보행 재활 프로토콜을 척추 수술 환자들에게 적용해왔다. 수술 후 걷기가 어려운 환자에게 의료용 로봇을 착용시켜 서기와 균형 잡기, 평지 보행, 계단 오르내리기 같은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념이다.
◇웨어러블로봇 입고 5회 훈련만에… “일상 수행능력 39% 향상”
박 교수를 포함해 재활의학 전문의 3명과 물리치료사 2명으로 구성된연구팀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의 2023년 사회적약자 편익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돼 웨어러블 보행 재활 로봇을 활용한 근골격 대수술 고령자 대상 조기회복 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웨어러블로봇 전문기업 엔젤로보틱스가 의료용으로 개발한 보행 재활 로봇을 척추고정술, 고관절치환술 등 근골격 대수술을 받은 고령자에게 확대 적용해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를 돕는 것이 골자다.
문씨를 포함해 2023년 6~12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받았던 고령 환자 32명을 대상자로 삼았다. 분석에 따르면 로봇의 도움을 받아 총 5회에 걸친 보행 재활 훈련을 받은 환자들은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평균 38.6% 증가해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훈련 전후 일상생활에 필요한 개인 위생, 의복 착용, 식사하기 등의 수행능력이 얼마나 수월해졌는지를 측정한 수정바델지수(MBI)를 살펴본 결과다. 환자들은 수술 후 평균 17.9일 만에 로봇 보조 보행 훈련에 돌입해 특별한 부작용 없이 재활을 마쳤다. 환자 보행 능력을 평가·분류하는 기능적 보행지수(FAC)는 훈련 전 2.65점에서 훈련 완료 후 3.78점으로 상승했다. 만족도를 설문한 결과 피험자들은 로봇 이용에 대해서는 5점 만점에 3.30점, 로봇을 이용한 보조 보행 훈련 자체는 3.72점을 메겼다. 피험자들의 평균연령이 66.8세(중앙값)로 높은 편이었음에도 로봇을 이용할 경우 보행 시 낙상에 대한 공포가 감소한다는 데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봇 보조 보행 훈련에 대한 효과를 명확하게 확인한 첫 사례다.
◇ 국내 재활로봇 기술 세계시장서도 인정…낮은 의료수가에 현장 활용 제한적
박 교수는 “로봇산업진흥원의 로봇보급사업 등을 통해 많은 병원들이 재활로봇을 도입했다”며 “국내 재활로봇 기술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재활치료에 로봇을 활용하면 치료사의 실력과 경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타 병원에 전원하더라도 일관된 치료를 받는 것은 물론 후속 버전인 경량형 웨어러블을 활용할 경우 후 집에서도 기능회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의료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낮은 점은 현장 활용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흔히들 사람이 할 일을 로봇이 대신하면 인건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여기지만, 보행 재활 로봇은 훈련 내내 치료사가 온전히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 절감 효과가 전혀 없다. 심지어 로봇 가격 자체가 비싸니 정부의 지원사업이 아니라면 일선 병원들이 자비를 들여 도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박 교수는 “향후 로봇 보조 보행 훈련의 활용 범위가 근감소증, 중환자실 환자 등으로 넓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지속적인 프로토콜 개선, 맞춤형 로봇 개발, 효과 검증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면서도 “원가 보전도 안되는 보험정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의료진은 물론 로봇 개발업체들이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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