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석방으로 여야의 정치 지형이 출렁이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윤 대통령이 여야 대선 경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수밖에 없어서다. 조기 대선 채비를 서두르던 여권의 잠룡들은 뜻밖의 변수로 대권 행보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해진 양상이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야권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여당 내 탄핵 찬성을 주도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10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인신 구속은 절차적 정당성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법원에서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구속 취소 결정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윤 대통령을 풀어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탄핵에 찬성하던 입장을 냈던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헌법재판소에 직격탄을 날리며 기류 변화를 보였다. 오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헌재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해 실체적·절차적 흠결을 보완하기 위해 변론을 재개해야 한다”며 “흠결을 안고 시간에 쫓겨 결론을 내릴 이유가 없으며 그럴 경우 심각한 갈등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헌재 심판에서는 윤 대통령이) 잘못된 구속으로 방어권이 현저히 제한된 상태에서 변론이 진행됐으며 이는 두고두고 심각한 문제점으로 헌정사에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표적인 여권 내 반윤(반윤석열) 인사인 유 전 의원 역시 전날 “헌재도 그동안 절차적 정당성에 흠결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며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의 조속한 판단을 촉구했다.
여권 내 차기 대통령 지지율 1위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조기 대선 시 출마 여부와 관련해 “보궐선거는 대통령이 궐위돼야 하는데 나는 궐위되지 않기를 바라고 안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야권도 들썩이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윤 대통령 석방이 악재만은 아니라는 정서가 강해지고 있다. 검찰 개혁을 동력으로 삼아 지지층을 끌어 모으겠다는 전략도 내비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 석방과 관련해 “내란 수괴의 내란 행위에 사실상 검찰이 핵심적으로 동조한 데서 더 나가 주요 임무에 종사했던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해괴한 잔꾀로 내란 수괴를 석방해줬다”며 “(검찰과 윤 대통령이) 아마 한패라서 그럴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검찰을 싸잡아 비판했다.
야5당은 앞서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즉시 사퇴를 주장하는 한편 탄핵까지 예고한 상태다. 다만 실제 탄핵소추안 발의에 대해서는 여론에 추이를 살피고 있다. 원내 지도부의 한 의원은 “탄핵보다는 향후 검찰 개혁의 명분 쌓기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주춤했던 검찰 개혁의 모멘텀을 윤 대통령 석방에서 찾겠다는 얘기다.
검찰과 윤 대통령을 향해 “한 패”라고 지칭한 이 대표의 발언도 상당히 계산된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계엄과 이를 옹호하는 세력을 묶어 헌정 문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야당 입장에서는 대통령 석방 역시 검찰의 ‘기획’으로 보고 지지층 결집에 세를 불리겠다는 목표다. 지난 대선에서의 0.73%포인트 석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 석방과 검찰 개혁을 결부시켜 최대 결집을 통해 압도적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이미 야당은 “체포동의안을 검찰-비명이 짰다”는 이 대표의 발언 역시 윤 대통령 석방으로 잠잠해지는 뜻밖의 효과를 누렸다.
아울러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귀환으로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의 인질이 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여권의 대선 주자들은 윤 대통령과의 거리를 두기 어렵게 됐고 중도 보수를 표방해온 이 대표 입장에서는 중도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 대표는 여권 주자를 오른쪽으로 더 밀어붙이고 당 내부와 야권 전체의 지지까지 챙기며 윤 대통령 석방을 호재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야권 주자들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단식 외에 뚜렷한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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