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최고세율 인하를 양보하고 배우자 상속세 폐지를 뼈대로 한 상속세법 개정안을 우선 합의 처리하자고 제안하면서 1997년 이후 28년 만에 상속세 공제 기준 현실화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이 거듭 강조한 최고세율 인하를 뒤로 미루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낡은 상속세제를 이번 만큼은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와 조기 대선 가능성에 따른 중산층 표심 경쟁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따른 절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과 함께 산업계 숙원인 최고세율 인하가 빠진 데 대해 “미완의 개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복귀하면 조세소위에서 배우자 상속세 폐지와 세액공제 한도 확대 등 합의가 가능한 것부터 우선 처리하고 세율 인하는 추후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며 단식 농성을 벌인 박 의원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야당과 기재위 조세소위 일정을 논의해 상속세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하자는 설명이다. 특히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최고세율 인하와 최대주주 할증제도 폐지는 논의에서 제외하고 사실상 합의하거나 절충 여지가 있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와 공제 한도 확대 등을 먼저 처리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 소속 송언석 기재위원장은 “우리 당은 조세소위를 빨리 열어 협상 테이블 위에 마주 앉자는 입장을 유지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여야 이견을 이유로 언제까지 상속세법 개정을 미룰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의 제안을 수용할 경우 기재위는 조만간 조세소위를 열고 현행 5억 원이 한도인 배우자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고 일괄공제와 자녀공제 등 세액공제 한도를 확대하는 합의안을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이미 배우자 상속세 폐지는 여야 대표 간 의견이 일치한 만큼 일괄공제와 자녀공제 한도에 대한 절충점을 집중적으로 찾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5억 원인 일괄공제 한도를 두고 여당은 10억 원, 야당은 8억 원으로 상향하자는 입장으로 여야 간 합의가 어렵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현행 5000만 원인 자녀공제 한도에 대해서도 여당은 상향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부의 대물림’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상황이다. 다만 여당이 합의 가능한 것부터 우선 처리하고 최고세율 인하와 같은 쟁점 사안은 추후 계속 논의하자는 입장이어서 세액공제 한도는 야당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상속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1997년 이후 28년 만에 상속세 공제 기준이 현실에 맞게 바뀐다. 조세소위 소속의 한 의원은 “상속세는 최근 정국 상황과 무관한 민생 문제인 만큼 여야가 조세소위에서 조속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치권에선 조기 대선 가능성으로 인해 여야가 중산층 표심을 겨냥한 정책 경쟁에 돌입한 것이 상속세 개편 급물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배우자 상속세 폐지를 뼈대로 한 ‘원포인트’ 개정안이 처리된다 하더라도 실질적인 세 부담 완화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워낙 상속세 제도가 복잡다단한데다 이미 현행법 체계 하에서 최선의 절세 전략을 짜놓았기 때문이다. 나철호 재정회계법인 대표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대해 “과세 체계 합리화 측면에서는 의미가 상당하나 절세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우선 수혜 대상이 예상만큼 많지 않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행법상 배우자는 최대 30억 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뒤집어 말해 30억 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상속받을 경우에만 배우자 상속세 폐지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배우자 상속세가 폐지되더라도 배우자에게 전액을 상속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나 대표는 “예를 들어 부부가 각각 100억 원씩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배우자 상속세 폐지는 의미가 없다”면서 “부부 중 한 명만 100억 원을 가지는 경우에도 우리 세법상 초과 누진세율 구조를 감안하면 배우자와 자식이 절반씩 물려받는 게 유리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가업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는 50%의 최고세율(최대주주 할증 시 60%) 인하를 포함시키지 못하면서 산업계를 중심으로 “핵심이 빠진 상속세법 개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여당이 야당의 ‘초부자 감세’ 프레임에 굴복하면서 22대 국회에서 세율 인하를 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여야는 이날 국정협의회에서 연금개혁 소득대체율을 두고 각각 43%와 44%를 주장하며 대치한 끝에 소득 없이 파행했다. 다만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해 정부와 여야 정책위의장, 예결위 간사 등이 참여하는 실무협의회를 꾸리는 것에는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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