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 의대 정원과 교육 정상화 방안에 대해 당사자인 의대생을 비롯한 의료계는 일제히 냉담한 반응을 보여, 의정 갈등이 또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대생 단체는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정부 대책으로는 24·25학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도 “정부의 무능만 보여줬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대 학장들은 학생들이 돌아오도록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비대위원장은 7일 교육부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의 발표에 대해 입장문을 통해 “총장들이 증원분에 대한 교육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면서도 안 돌아오면 5058명을 뽑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며 “다시는 교육과 학생을 위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비대위원장은 “언젠가는 동시에 본과 임상 수업, 병원 실습을 해야 하는데 교육 여건이 마련돼 있느냐”며 “전공의 수련은 제대로 가능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철회, 의료 전달 체계 확립, 교육 파행 해결,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 결정 투명성 강화 등 기존 요구 사항을 재차 강조했다.
의협도 입장문을 통해 “지금 제시된 내용으로는 교육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이 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실패한 의대 증원 정책의 부당함과 부적절함을 사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책임자 문책과 사과, 의료 개혁 과제들의 논의 중단을 요구했다. 박단 비대위원장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입장을 낼 가치가 없는 것 같다”며 “상식적으로 7500명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귀하지 않으면 5058명이라는 건 학생들을 상대로 한 사기와 협박”이라며 “학장은 정부 권력에 편승해 제자들을 시궁창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일선 의대 학장들은 의대생 복귀를 위한 설득전에 들어갔다. 최재영 연세의대 학장은 서신을 통해 “24일부터 시작하는 특별교육일정을 편성했으며 이날 이후 복귀는 불가능하다”며 “정부와 협상은 선배들에게 맡기고 학교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온·오프라인에서 복학을 막는 행위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라 엄격하게 징계하겠다고 덧붙였다.
의대 일선 현장의 교수들은 “복귀는 당사자인 학생들의 결정에 맡겨야 할 문제”라며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정부 결정이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는 “투쟁을 하더라도 학업과 병행하길 권하고 싶다”며 “정부가 물러선 것 자체는 긍정적이며 의료계도 이를 받아들여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채희복 충북의대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이달 말까지 전원 복귀하지 않으면 2000명 증원을 유지한다고 밝힌 데 대해 “잘못이 학생들에게 있으니 항복하라는 의미”라며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환자단체들은 정부의 의료 개혁이 후퇴했다며 일제히 반발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성명에서 “지난 1년간 눈치만 보던 교육부와 여당의 발표는 무책임하고 비겁하다”며 “환자의 희생만 남은 대책이라 환영만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장은 “배신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의료 개혁 문제에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 5조~6조원이면 간병 문제,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보 적용까지 다 해결 가능하다”며 “누가 이 문제를 책임지겠나”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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