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까지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의정 갈등에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의대생의 복귀를 위한 마지막 카드로 풀이된다. 의대 정원을 늘려 부족한 의사의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의료 개혁의 토대를 만든다는 대의는 후퇴가 불가피하지만 의대 교육의 파행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각 대학 총장이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 수준으로 돌려 학생들의 복귀를 설득하고 2027학년도부터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서 논의하는 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사태 해결을 위한 공이 의료 현장을 떠난 의대생·전공의 쪽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내년도 의대 모집 정원을 증원 이전으로 되돌리자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회의 후 “의대 교육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생 복귀가 시급한 과제”라며 “정부가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여당의 이 같은 결정에는 올해 입학한 ‘25학번’ 신입생조차 집단 휴학에 가세하면서 내년까지도 의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크게 작용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의 24학번부터 19학번(본과 4학년)까지 총 1만 83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6.6%가 1학기 휴학 의사를 학교 측에 전달했다. 서울대·건양대를 제외한 모든 의대가 학칙상 신입생의 1학기 휴학을 금하기 때문에 각 대학은 집단 유급 사태를 막기 위해 개강 일정도 미루고 있다. 가톨릭대가 개강일을 다음 달 28일로 연기한 것을 비롯해 강원대·울산대는 이달 31일, 고신대도 이달 17일로 미룬 상태다.
KAMC는 지난달 17일 사태 해결의 대안으로서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으로 되돌리자고 공식적으로 건의했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의교협) 소속 8개 의료단체와 의료계 원로들도 내년 정원을 3058명으로 재설정하고 2027년 이후에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의학 교육 지원책을 구체화할 것 등을 요구하며 학장들의 요구에 힘을 실었다.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 총장들도 3월 텅 빈 강의실을 접한 후 증원을 원했던 당초 입장을 바꿔 학장들의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전날 정부에 같은 입장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내년 의대 정원 결정은 각 대학 총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가운데 증원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한 수급추계위 설치 법안은 부칙을 통해 내년도 의대 정원을 수급추계위에서 결정하지 못할 경우 각 대학 총장들이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협의한 범위 내에서 모집 인원을 자율 결정하도록 규정했다. 대학 총장들이 의대 정원 동결에 동의한 만큼 의대 학장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 정원이 아닌 모집 인원을 3058명으로 조정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급추계위는 2027년 이후 중장기적 수급 추계 시스템으로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의대 정원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그간 의대 정원 원점 재검토라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대표적 의료 개혁 과제로 현재 전선을 상징하는 사안인 의대 정원 증원이 무너질 경우 정책에 대한 일관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구체적 내용 제시 없이 무조건 백지화,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부는 물론 여당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으로 되돌리는 데 동의한 만큼 복지부는 부처 간 조율을 통해 이를 최종적으로 매듭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는 이날 입장문에서 “각 대학 총장님의 마음에 공감한다. 당사자인 의대생들의 입장을 감안해 정부 내에서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밝히며 이전에 비해 누그러진 어조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정부의 이 같은 최후통첩에 응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전면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만큼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이진우 한국의학교육협의회장은 “복지부도 진일보한 반응을 냈으니 이제 논의가 좀 될 것”이라며 “정원 3058명 외엔 현실적인 방법이 없는데 학생들이 돌아갈지 문제”라고 말했다. 강희경 서울의대 교수는 “당정 합의가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사직·휴학이 과연 효과적인 투쟁 수단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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