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근로소득세 등을 놓고 여야가 벌이는 감세 전쟁이 노골적으로 조기 대선을 겨냥한 ‘매표용 공약’이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년간 발생한 87조 원 규모의 세수 펑크와 재정 건전성 악화 등에 대해 여야 모두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재원 조달 방안이 불분명한 선심성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경제계에서는 세입 확충 계획 없이 너도나도 퍼주기에 혈안이 된 여야 감세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야가 상속세 개편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던 가운데 국민의힘은 6일 돌연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를 꺼내 들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그 배경으로 “함께 재산을 일군 배우자 간의 상속은 세대 간 부의 이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속세 일괄 공제액과 배우자 공제 한도를 높이는 내용의 더불어민주당 개편안에 대해 “여전히 과도한 세금 부담을 안기는 징벌적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현행 유산세 방식을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현행대로라면 상속세는 사망자의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과세되는데 이를 상속인별로 물려받은 자산 규모에 맞춰 받은 만큼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의미다.
민주당은 이날 국민의힘 의원이 상임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에서 논의 중인 법안에 대해 합의 불발 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강행 처리 방침을 통보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괄 공제와 배우자 공제만 각각 8억 원, 10억 원으로 늘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비롯해 은행법·가맹사업법 등이 모두 반도체특별법처럼 야당 단독안으로 강행 처리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합의 처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하겠지만 국민의힘이 끝내 몽니를 부리면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중 은행 가산금리에 보험료·출연금 등을 반영하지 못하게 한 내용의 은행법은 대출금리 감소로 이자 수익과 같은 은행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금융권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법안이다.
민주당은 중도층 표심을 공략해 근로소득세 완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민주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근로소득세 현황 및 과세합리화 방안’에는 소득세율 6%와 15%에 해당하는 하위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하는 ‘과세표준 모수 조정’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소득세율 6% 과표 구간을 기존 ‘1400만 원’에서 ‘1500만 원’으로 올리고 △세율 15% 과표 구간을 기존 ‘1400만 원 초과 5000만 원 이하’에서 ‘1500만 원 초과 5300만 원 이하’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골자다. 이 개편안에 따라 소요되는 연간 재정만 총 2조 7000억 원 규모로 조사됐다. 민주당은 중장기적으로는 과세표준에 물가 상승률을 연동하는 ‘소득세 물가연동제’까지 검토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표는 근로소득세 토론회 축사를 통해 “물가 상승에 따른 ‘소리 없는 증세’인 근로소득세 부담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실정으로 합리적인 조세정책이 필요하다”며 근로소득세 완화 의지를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조세정책이 지나치게 선심성 감세에 초점을 맞췄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세금을 깎아주겠다면 어디서 모자라는 세수를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함께 제시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없다”며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면 당연히 세수가 줄 수밖에 없는데 대안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도 “세수 결손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고 연구개발(R&D)을 포함해 각종 예산이 모두 삭감된 상황에서 추가 감세를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급격한 고령화로 향후 국가가 돈을 써야 할 일이 많은데 그때 가서 감세 정책을 되돌린다는 말은 하기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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