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에 응급의학과 전공의 21명이 있었는데 그 중 12명이 수련 과정에서 경찰 조사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중 절반 이상이 의료소송에 휘말린다는 뜻입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과 의료사고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진행 중이던 4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출신 사직 전공의 박재일씨는 토론자로 나서며 전공의들이 과도한 법적 책임에 몰리고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전공의들은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지원했다면서도 “이런 환경이 더 극심해지면 누가 지원하려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정책토론회에서는 박씨 외에도 현직 의대 교수 등 의료계 인사들이 전공의들이 과도한 근무시간과 의료사고·의료분쟁에 묶여 있다며 수련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발제를 맡았던 허윤정 단국대병원 외상외과 교수는 “전공의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상 주당 근로시간 상한은 52시간이지만 전공의는 주 80시간과 교육목적 8시간까지 최장 88시간 근무하도록 돼 있으며, 최대 36시간까지 연속근무가 가능하다. 허 교수는 “전공의를 위한 정책 및 제도 등을 심의·평가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대한병원협회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며 그 구성은 전공의 위원이 과반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전공의들이 혼자 책임을 떠안는 일도 부당하다. 면책까지는 힘들더라도 적어도 단독 책임은 묻지 않는 등 고민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판결문들을 보면 전공의가 혼자 해도 되는 것으로 알려진 술기를 시행하다가 과실을 일으켰다거나 저연차 전공의나 간호사를 감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독으로 법적 책임을 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박재일씨는 수련병원의 법적 책임 부담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외처럼 수련병원과 국가가 무과실,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2007~2016년 수술 분과 전공의 의료소송 750건 가운데 85%는 병원이 기소됐고 전공의가 기소된 건은 복합 기소를 포함해도 18%에 불과하다.
토론자로 나섰던 사직 전공의 김찬규씨는 “지금 전공의들에게는 ‘주6일 근무가 왜 당연한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련병원이 환자들에게 전공의들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의무고지 제도의 법제화와 함께 수련병원에 대한 바텀업 방식의 수련평가 도입 등을 제안했다.
한편 토론자로 함께 참석한 강준 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의료사고심의위원회 활성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강 과장은 “의료사고로 형사 고소·고발되면 심의위를 구성해서 중대과실이 있으면 기소하되 그렇지 않으면 불기소를 형사 당국에 권고할 수 있는 체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가 규제 요소일 수도 있지만 개인 책임을 기관 책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책임보험인 만큼 국가 재정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게 공적배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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