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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대만 ‘타오위안’ 계획





1988년 1월 9일, 대만의 장셴이 육군 대령이 미국으로 망명해 극비리에 진행되던 대만의 핵 개발 추진 계획을 폭로했다. 중산과학연구원 내 핵무기 연구센터 부소장을 맡고 있던 그는 미국에 핵 개발 관련 비밀 문건을 건넸고 미국은 이를 들이대며 대만에 핵 개발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대만 안보를 위한 6개 방위 공약을 폐기하겠다는 미국의 으름장에 대만은 ‘타오위안 핵 개발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타오위안 계획은 1969년에 시작됐다. 기존의 공개 핵 개발 프로젝트 ‘신주 계획’이 경제·안보 부담 등을 우려한 내부 반발에 부딪히자 이름을 바꿔 극비 계획으로 전환한 것이다. 1964년 중국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자 장제스 당시 대만 총통은 1965년 “5년 내 핵폭탄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신주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스라엘의 핵 개발 모델을 본뜬 이 계획은 대만 서부 신주에 있는 대만 칭화대 안에 원자로를 설치하는 것이어서 신주 계획으로 불렸다. 이를 대체한 타오위안 계획은 타이베이시 외곽 타오위안의 중산과학연구원을 핵무기 개발 본거지로 삼았고 1980년대 중반에는 핵무기 생산이 단기간 내 가능한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타오위안 계획을 폭로했던 장셴이가 최근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1988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떳떳하다”고 말했다. “최소한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발발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그의 폭로로 핵 개발이 좌절된 대만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027년 대만 침공 준비 지시’ 등 갖가지 대만 침공 시나리오에 속수무책의 수세에 처해 있다. 우크라이나가 1994년 핵무기 완전 포기를 대가로 미국·영국·러시아 등으로부터 영토 보전 및 주권 존중을 약속받은 ‘부다페스트 각서’에 서명했다가 속절없이 러시아로부터 침공당하고 이제는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것도 자주 국방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우리도 안보를 튼튼히 하려면 핵잠재력 증강을 포함해 압도적 군사력을 확보해야 한다. 힘 없는 평화 다짐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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