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건설사들의 민간 비주거용 건축 수주액이 4년 만에 최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불확실성에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반도체 공장, 리조트, 쇼핑몰 등 굵직한 공사계획이 무산되거나 지연된 여파로 풀이된다.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늘려 건설경기를 회복하겠다는 복안이지만, 마진율이 높은 민간 발주 회복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사들이 민간 기업으로부터 수주한 비주거용 건축 공사금액은 46조 1141억 원으로 전년(50조 4318억 원)대비 약 9% 감소했다. 이는 2020년(43조 5951억 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민간 주거용 건축 수주액이 2023년 약 62조 원에서 지난해 약 68조 원으로 약 10%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비주거용 감소세가 더 두드러진다.
민간 비주거용 건축 공사에는 반도체 등 하이테크 공장부터 호텔·리조트, 쇼핑몰, 상가 및 지식산업센터 등이 포함된다. 전체 민간 건축 수주액에서 비주거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민간 비주거용 수주액은 2022년에 약 72조 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23년 50조 원, 지난해 46조 원으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올해는 40조 원을 밑돌 것으로 건설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민간 공사 수주액이 줄어든 건 공사비 상승 등 여파에 발주 자체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리조트 기업 아난티는 지난해 경기도 청평에 건설 예정이던 ‘청평 레이크 드 아난티 코드’의 착공 일정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공사비가 급등하자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재설계 과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공사비 500억 원을 투자한 뒤 분양권을 700억 원에 팔아 이익을 남겼다면, 현재는 공사비만 1000억 원이 넘어가 손을 못 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중견 시행업체인 A사는 2023년 경기도 평택에 20호실 규모의 상가를 짓기 위해 땅을 사들였지만 올해 들어 계획을 잠정보류했다. 2년 새 30%가 넘게 뛴 공사비를 분양가에 반영해 손실을 메우자니 미분양 우려가 크다는 판단에서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건설업계의 지난해 하반기 민간 사무실 및 점포 수주액은 6조 5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간(8조 4000억 원) 대비 약 23% 감소했다.
경기 침체에 기업 투자가 위축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삼성물산 건설 부문의 건축 부문 수주액은 11조 4650억 원으로 전년(17조 7480억 원)대비 약 35% 감소했다. 재건축·재개발 등 주택공사 수주액은 늘어난 반면 삼성전자 등이 발주하는 반도체 설비 등 하이테크 공사액이 급감한 여파로 풀이된다. 롯데쇼핑과 신세계프라퍼티 등 유통 기업도 소비심리 위축 등에 따라 복합쇼핑몰 개장 시기와 일부 지점의 리뉴얼 공사 일정을 줄줄이 미루고 있다.
비주거용 건축 공사 먹거리가 급감하자 중소·중견 건설사들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기업은 총 641곳으로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다. 올해 들어 이날까지 접수된 폐업 신고는 총 109건에 달한다. 시공능력평가 71위의 삼부토건은 지난달 24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삼부토건은 경산시 물류창고와 구리시 복합시설 등 비주거용 건축 공사를 주로 수행해왔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 정치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올해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는 국내 설비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할 유인과 뚜렷한 투자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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