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취역한 미국 해군의 핵추진항공모함 함명에 이례적으로 전직 하원 의원 이름이 붙여졌다. 하원 의원을 지내고 한 해 전에 별세한 칼 빈슨이었다. 고인은 생전 의회에서 미 해군력 강화에 힘썼다. 1940년에는 미 해군 규모를 기존보다 70% 이상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빈슨·월시법’ 등의 입법을 주도했다. 미 해군이 주로 역대 대통령 이름을 빌려 항모 명칭을 짓던 관례를 깬 데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세계 해상 패권을 지키겠다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칼빈슨함의 전투력은 괴물급이다. 2개의 원자로를 달아 최고 시속 30노트(시속 56㎞)로 최장 20~25년간 연료 재보급 없이 항해할 수 있다. 적의 레이다 탐지를 피하는 스텔스 전투기 F-35C를 비롯해 80~90대의 항공기 탑재도 가능하다. 축구장 넓이의 3배가량에 달하는 비행갑판에서 신속히 전투기를 띄워 적진을 초토화할 수 있다. 배 한 척에 중소 국가 수준의 공군력이 담긴 셈이다. 그 파괴력은 1990년대 초 걸프전과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빛을 발했다.
칼빈슨함이 이달 2일에 부산항에 입항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반도 안보 공약 이행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미 해군의 군함들은 현재 심각한 노후화에 직면했다. 니미츠함 등 5척의 항모는 1975년부터 1980년대 사이에 취역했다. 에이브러햄링컨함 등 3척도 1990년대 취역해 노후화 시점에 진입했다. 그중 일부는 수명 연장 조치를 받았는데 한 척당 평균 40억 달러의 유지·보수 비용과 4년의 세월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대규모 재정 적자와 조선업 쇠락 때문에 강력한 해군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고품질의 선박을 합리적 가격으로 빠르게 건조할 수 있는 한국이 미 해군의 군함 현대화 사업에 참여한다면 양국은 국익·안보 지키기 측면에서 서로 이익을 주고받을 수 있다. 요동치는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 및 방산 협력을 굳건한 한미 동맹의 고리로 삼을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총력전을 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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