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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에너지 지배의 황금기를 열다(Unleash Golden Era of American Energy Dominance)”
미국 에너지부(DOE)는 지난달 5일(현지 시간) 이렇게 명명한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자국 에너지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에 찬 선언인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죠. 이번에 발표된 에너지 정책은 그 연장선에서 ‘미국의 에너지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습니다.
‘에너지 대량 생산, 대량 소비’로 복귀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3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나는 여러분도 익히 아시는 화석연료의 부활 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1월 취임식에서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치며 석유·천연가스 시추 확대를 선언한 것은 익히 아실 겁니다. 미국은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1973년 이후 45년 만에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를 탈환한 뒤로 계속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1346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이것도 부족하다’며 생산량을 더 늘리겠다는 것이고요.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대표적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 산업을 키우겠다는 계획이지만, 방점은 아무래도 화석연료에 찍힐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초대 에너지부 장관인 크리스 라이트의 이력 자체가 화석연료로의 회귀 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인데요. 셰일가스 시추 회사인 리버티에너지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그는 2019년 수압파쇄법(프래킹)에 사용되는 프래킹 유체가 안전하다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직접 ‘원샷’을 하는 퍼포먼스로 유명세를 탄 바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에너지 대량 생산으로의 복귀입니다. 사실 에너지를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는 것은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한 세계적인 흐름입니다. 산업화 시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고속 성장을 목표로 삼다 보니 에너지는 무조건 ‘싸고 양 많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기후변화를 넘어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미국 에너지부는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더 적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오히려 에너지와 국가 안보를 약화시켰다”고 강조합니다.
이 부분은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결국 정권을 내준 데 대한 타산지석이기도 합니다. 바이든 정부 당시 배럴 당 100달러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은 유가가 고물가의 주범이었던 만큼, 필요 시 가격 억제가 가능하도록 석유 공급을 늘려 놓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한 손엔 관세, 다른 손엔 가스
세 번째가 키워드가 에너지 제패 전략의 핵심일 듯 합니다. 바로 석유·가스 수출 확대입니다. 생산을 늘렸으니 공급 과잉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출 확대는 필수겠죠. “우리의 풍부한 에너지는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다”라는 미 에너지부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에는 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계속 확대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전방위 ‘관세 전쟁’에서도 미국산 화석연료는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죠. 유럽연합(EU)·일본·인도 등 미국의 관세 파고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라들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협상 카드로 내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가스 패권’ 의도를 읽은 것이죠. 관세 협상을 위해 26일부터 사흘 동안 미국을 방문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미국의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 참여 문제 등을 백악관 측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트럼프 ‘석유 패권’ 도전, 푸틴의 속내는
미국의 숙적이자 또 다른 에너지 대국,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제패 시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선 중국은 미국이 2월4일부로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곧바로 미국산 석탄과 LNG 등에 15%, 원유·농기계 및 대형 자동차에 10% 관세를 각각 부과하는 보복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LNG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죠. 2023년 한 해 수입량만 978억 입방 피트를 기록해 일본(903억 입방 피트), 한국(606억 입방 피트) 등 보다 많았는데요. 다만 미국산 LNG는 중국 수입 물량의 5%에 불과해, 당장은 중국의 조치로 인한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로이터통신은 석탄의 경우 미국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유는 미국이 호주(1591만 톤), 러시아(1168만 톤), 캐나다(779만 톤)에 이어 중국에 제강(製鋼)용 점결탄을 네 번째로 많이 수출하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에너지 측면에서는 중국이 트럼프 관세에 ‘잽’으로 맞받아 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크라이나전(戰) 종전 협상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는 하루 석유 생산량이 1027만 배럴(2023년 기준)로 미국(1330만 배럴)에 이어 2위이고, 말 그대로 화석연료 수출에 국가 경제가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자국 화석연료 수출을 확대해 에너지 패권을 차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와 정확하게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영문판 닛케이 아시아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빌 해거티 미 공화당 상원 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산 LNG를 미국산이 대체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는 내용입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종전을 계기로 어디까지 신(新) 밀월을 이어갈 수 있을지 에너지 측면에서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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