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대기업인 웨스턴디지털(WD)이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분리 상장하면서 일본 키옥시아와의 통합 가능성이 다시금 점쳐지고 있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시장 점유율이 현재 메모리 부문 선두인 삼성과 맞먹는 수준으로 올라서는 만큼 반도체 업계의 '빅딜'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WD가 지난 21일(현지 시간) 메모리 사업부인 '샌디스크 코퍼레이션'을 미국 나스닥에 별도 상장했다고 보도하면서 키옥시아와 합병을 통한 낸드 메모리 시장 재편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WD와 키옥시아는 지난 2023년에도 합병을 추진한 바 있다. WD가 반도체 사업부를 분리하고 키옥시아와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키옥시아 주주인 SK하이닉스가 반대하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SK하이닉스는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을 필두로 한 투자 컨소시엄에 약 4조 원을 투입해 키옥시아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회사가 투자한 기업이지만, 낸드 사업분야의 주요 경쟁자이기도 한 만큼 키옥시아의 시장 점유율 확대를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낸드 시장 세계 점유율에서 키옥시아는 3위(15.1%), WD는 4위(10.7%)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25.8%의 점유율로 SK하이닉스(20.6%)를 넘어 업계 1위인 삼성전자(35.2%)를 추격하게 된다. 더 나아가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생산 공정을 효율화하고 연구개발 비용을 절감하는 등 생산 능력과 기술력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WD와 키옥시아의 합병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말 키옥시아가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이번에 샌디스크도 독립 상장하면서 각 기업의 지분 가치가 명확해져 합병 문턱이 한층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합병 추진 당시 양사는 통합법인의 비율 산정으로도 진통을 겪었다. 당시 키옥시아는 비상장사였고 WD는 복합기업이었기 때문에 메모리 사업부문의 정확한 가치 평가가 어려웠던 탓이다.
키옥시아 관계자는 "회사 고위 임원들과 일본 경제산업성의 일부 인사들은 여전히 WD과의 통합을 지지하고 있다"고 닛케이에 전했다.
다만 합병에 대한 규제 당국의 승인과 반독점 문제 등은 넘어야 할 산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규제 당국은 양사의 합병이 시장에서의 경쟁을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을 경우 반독점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중국 당국이 미국과 일본 기업 간 통합에 엄격한 심사를 진행할 가능성도 높다. 한 글로벌 투자자는 "미·중 대립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며 미국이 중국을 설득할 확률은 더 낮아질 것"이라며 합병 성사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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