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눈을 카메라에 비유한다면 망막은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중에서도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은 정밀한 시력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곳에 이상이 생기면 글자가 흔들리거나 휘어져 보이거나 사물이 왜곡돼 보이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질환이 심해지면 중심시야가 흐려지거나 아예 보이지 않게 된다. 그 결과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고 독서, 운전 같은 일상생활에도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황반 질환은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안구 조직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나이관련황반변성(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은 노화 과정에서 생기는 황반 부위의 변성으로 인해 중심시력 저하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고령층에서 실명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어 병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위험하다.
질병관리청의 2017~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황반변성은 50대에 10명 중 1명 꼴로 발생하다가 80대 이상에서는 3명 중 1명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황반변성 유병률이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의미다. 나이관련황반변성은 크게 건성과 습성으로 나뉜다. 건성 황반변성은 서서히 진행되며, 장기간 관찰해도 시력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습성 황반변성은 상대적으로 드문 대신 시력 손상 정도가 심각하고 진행 속도가 빠르다. 이는 망막 아래쪽에서 비정상적인 혈관이 새롭게 자라나면서 출혈과 부종을 유발하고, 결국 시세포를 손상시키는 병리 기전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질병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습성 황반변성의 주요 치료법은 혈관내피성장인자(VEGF) 억제제를 눈 안에 직접 주사하는 것이다. VEGF를 억제하는 주사제는 신생 혈관의 성장을 억제하고 부종을 감소시켜 시력 저하를 늦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치료를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반복 치료가 필요하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조기 치료를 받을 경우 시력 보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적인 안과 검진을 통해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황반변성의 원인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연령이 증가할수록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도 발병 확률이 증가한다. 고혈압, 심혈관질환 같은 만성질환도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환경적 위험 요소는 흡연이다.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황반변성으로 인한 실명 위험이 두 배 이상 높다. 흡연량이 많을수록 질환 진행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식습관을 포함한 생활 습관도 황반변성 예방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포화지방이 많은 육류, 치즈, 버터 등을 과하게 섭취하면 황반변성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비만도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기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루테인, 지아잔틴 같은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녹색 채소와 오메가-3 지방산이 함유된 등푸른 생선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지나친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고, 비타민 C와 E가 풍부한 과일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도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약 황반변성을 진단받았다면 항산화 비타민과 미네랄 복합제를 꾸준히 복용하길 권한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루테인, 지아잔틴, 비타민 C·E, 아연, 구리 등 복합제 복용은 후기 황반변성으로 진행될 위험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황반변성이 없는 정상인에 대한 유용성은 증명되지 않았다.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보다 좋은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눈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기적인 안과 검진이 필수적이다. 특히 50세 이상이라면 1년에 한 번 이상 안과를 방문해 망막과 시신경, 혈관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 변화가 느껴진다면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넘기지 말고, 전문의의 상담을 받길 권한다. 시력을 보호하는 가장 유용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조기 진단과 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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