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출퇴근길에 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타워크레인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찰나의 순간에 마감하게 된 안타까운 생을 떠올린다.
20여 년간의 법원 생활을 마치고 작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설치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타워헤드 경사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추락해 사망한 사고에 관해 원청 건설회사와 현장소장이 산업안전보건법위반으로 기소된 형사 사건을 맡게 됐다.
박주영 부장판사가 쓴 ‘어떤 양형이유’라는 책 중 특히 산업안전에 관한 글을 공감하며 읽은 바 있다. 사람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화두로 삼고 살 때 누군가에게는 퇴근이 ‘귀가’가 아닌 ‘생환’의 문제가 된다는, 즉 ‘삶이 있는 저녁’이 중요한 생존 문제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런데 대형 로펌의 변호사가 되니 ‘사업주 편에 서서 변론을 하게 되는구나’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몇 건의 중대재해 사건을 더 맡게 됐다. 사고 경위나 기업이 행한 안전조치, 관련 법령 내용 등을 찬찬히 살펴보면 회사 입장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예측가능성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산업안전 사건을 바라보는 재판부의 시각에 균형잡힌 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
엄정한 처벌을 논하기에 앞서 인과관계를 따질 때는 사고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영역까지 인과관계 폭을 만연히 넓혀서는 안 된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와 ‘책임주의’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산업안전 형사 사건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특히 산업안전 사건 유형은 사고에 복합적 원인이 개입되고 산업기술 및 관련 법령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어서 사실관계를 바르게 확정하고 법령 해석 및 적용에 오류가 없어야 한다. 중대재해 사건의 경우 유기징역형 법정형이 ‘단기 1년 이상’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법원조직법의 예외 규정에 따라 단독재판부가 재판을 하고 있으나 충실한 심리와 숙고를 통해 결론이 도출될 수 있도록 중대재해 사건의 사물관할을 합의부로 변경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타워크레인 사건의 공판기일이 속행되는 동안 집 주변 재건축 단지는 준공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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