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전 세계에 안보·통상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특히 한미 동맹을 국가 안보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는 트럼프 2기의 상황 변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외교 정책의 최상위 목표는 중국 견제”라면서 “미국의 중국 견제 기조를 잘 활용한다면 미국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협력 과정에서 미국의 핵우산을 지금보다 비약적인 수준으로 강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계엄·탄핵 정국 탓에 한미 정상회담 등 동맹 간 교섭이 지체되는 데 대해서는 “아직은 윤석열 정부가 끝난 것이 아니므로 외교든 경제든 관료들이 하던 일을 흔들림 없이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북미 정상회담이 북핵 용인 등 우리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지만 한반도 통일 기회를 만들어낼 여지도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둘까.
△트럼프 2기 외교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중국 견제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의 미중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미중 경쟁이 펼쳐질 것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미중 전략 경쟁은 단순히 미국이 중국의 기술 굴기보다 앞서나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미중 전략 경쟁은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대결 차원으로 전면화할 것이다. 아직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등 주로 경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지만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의 발언을 보면 미중 간 경쟁이 신냉전식 체제 경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 측면에서 달라질 부분은 없는가.
△이 부분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1기 때의 고립주의에 가까운 입장에서 2기는 팽창주의적 성향으로 외교 정책이 진화했다. 그린란드를 병합시키겠다든가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편입하겠다든가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불러야 한다든가, 이런 식의 주장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나타난 뚜렷한 변화다.
-그런 변화를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게 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이나 미국 함정 MRO 협력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예컨대 트럼프 행정부에 절실한 MRO 관련 한미 협력 문제를 논의하면서 북핵에 대응한 우리의 자체 핵 보유 또는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식으로 미국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계엄·탄핵 정국 속에서 미국 정부와의 교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아직은 윤석열 정부가 끝난 것이 아니므로 외교든 경제든 관료들이 하던 일을 흔들림 없이 계속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 부처들은 일희일비하지 말고 전문성에 따라 기존 정책을 흔들림 없이 지속해서 이행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력은 외교부와 국방부 등 전문성을 갖춘 부처들이 주도권을 갖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대통령실이 정상적인 대외 교섭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외교부 장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 ‘딥시크’의 등장으로 중국의 잠재력이 만만치 않다는 말이 나온다. 미중 패권 경쟁의 향배를 어떻게 보는가.
△한때 중국이 2027년이면 미국을 국내총생산(GDP)에서 따라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 경제는 낮은 소비와 누적된 부채 문제, 인구절벽과 미국의 중국 때리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반기업 정책 등으로 설령 기술 굴기가 일어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이미 학계의 정설이다. 미국이 중국을 압도하는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앞으로 한중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는 게 바람직한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간재 대중 수출도, 중국 내수 시장 진출도 이제는 여의치 않다. 중국 내 반도체 생산 등 중국과의 기존 협력 관계를 당장 중지하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지만 우리의 대외 경제 협력에서 중국의 비중을 줄이고 미국 등 우리의 가치 연대국들과의 협력 비중을 늘려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은 핵보유국’이라고 발언했는데, 진의가 뭔가.
△미국 정부는 현실적으로 봤을 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북한 비핵화 정책 자체를 완전히 포기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한 듯하다. 최근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지 않았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를 강력하게 희망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북미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남겨두되 실질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스몰 딜’이 북미 간에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곧 재개될 것으로 보는가.
△일단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애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하노이 협상 실패라는 트라우마를 강하게 갖고 있는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를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일정 정도 조건이 맞을 경우에 한해서만 북미 실무회담에서부터 보텀업(bottom up)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할 것이다. 이어 자신이 원하는 내용들이 담긴 완전한 합의문이 만들어진 후에야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톱다운(top down) 방식의 북미 정상회담은 현재로서는 쉽지 않을 듯하다.
-만약 북미 간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한국 패싱’이 우려되는데.
△과거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 한국도 모르게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해버렸던 것에서 볼 수 있듯 북미 대화 과정에서 한국을 소외시키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도 주한미군도 오직 중국 견제를 위해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다. 그가 북한 위협 문제를 대화로 풀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미 대화로 북핵이 용인된다면 한반도 안보 불안이 커질 텐데.
△만약 미국이 북한 핵 동결을 대가로 대북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스몰 딜’을 한다면 한국의 안보는 어떻게 되며 미국의 핵우산은 또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이 우리 내부에서 커질 수밖에 없다.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크게 힘을 얻을 것이다. 다만 왈츠나 루비오 등 트럼프 정부 핵심 외교안보 참모들의 최근 발언을 보면 핵 도미노 현상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대안은 뭔가.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핵 억제력 강화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핵우산을 강화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반도에 비전략 핵무기를 배치하는 등 대북 핵 억제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대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 핵을 배치한다면 그곳이 괌이든 군산이든 오산이든 주요 목적은 중국 견제용이지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닐 것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북러의 군사적 밀착이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듯하다.
△당장 큰 문제는 중국 외에 러시아라는 또 하나의 강대국을 등에 업은 북한이 미국의 협상 요구에 아쉬울 게 없다는 식의 고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미 중국과 상시적으로 소통하는 관계이고, 우크라이나 파병 문제도 중국과 사전 협의에 따라 진행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을 등에 업은 상태라면 상당히 여유를 갖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북미 협상이 진행될 경우 북한이 바라는 쪽으로, 뒤집어 말하면 우리에게는 대단히 좋지 않은 허술한 협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 재개가 우리에게 기회 요인은 없는가.
△김정은은 결코 바라지 않겠지만 북미 협상 내용에 따라 한반도 통일의 기회가 또다시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이미 북한 주민들이 한국 드라마 등을 접하면서 눈을 뜨게 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간 협상 결과가 북한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강력한 외부 정보 유입의 통로를 주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북한 유사시에 북한 주민의 강력한 뒷받침 속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북측 파워 엘리트들에 의한 남북 협상을 통해 중국·러시아 등의 간섭을 배제한 통일 협상이 보다 용이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He is…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브라운대에서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을 주제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08년부터 국립외교원 교수를 지내며 한미 동맹, 북한 문제, 동북아 안보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한국세계지역학회 회장,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통일부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 등을 거쳐 지난해부터 세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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