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이다 역사는 인천에서 시작된다. 1905년 2월 일본인 히라야마 마츠타로(平山松太郞)가 인천탄산수제조소를 신흥동 해광사 인근에서 창업하며 사이다를 생산했다. 그 뒤 1910년 5월 나카야마 우노키치(中山宇之吉)가 같은 동네에 ‘라무네제조소’를 창업했다. 인천탄산수제조소는 ‘별표(星印) 사이다’와 라무네제조소는 ‘라이온’과 ‘헬스표’라는 상표로 사이다를 판매했다. 이처럼 인천에서 생산되는 사이다는 전국을 통틀어 그 제조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따라올 곳이 없었다.
사이다는 유럽에서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성 음료이다. 1853년 영국 해군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졌던 음료 역시 알코올 6도의 사과술이었다. 오늘날 톡톡 쏘는 시원한 탄산사이다와는 다른 음료인 것이다.
1868년에 영국인 노즈 안드레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여러 향료를 사용한 ‘샴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의 제품을 개발했다. 이 음료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오늘날 ‘사이다’라고 처음 불린다.
사이다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톡 쏘는 맛이 상쾌하고 산뜻해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았다. 식혜, 수정과와 같은 우리나라 전통 음료에서 사이다의 탄생은 ‘식음료문화의 혁신’인 셈이다. 당시 경인철도 차량에도 ‘대형사이다 광고판’이 붙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광복 후에는 ‘인천탄산’의 후신인 ‘경인합동음료’에서 ‘스타 사이다’를 만들었다. 이 무렵 전국 12개 업체 중 인천의 ‘스타사이다’와 평양의 ‘금강사이다’를 최고로 쳐줬다.
1950년 5월 9일 ‘칠성사이다’가 서울에서 출시되면서 이후 인천의 사이다는 대중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래도 인천에서 만들어진 ‘스타 사이다’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어 발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라는 만담 노래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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