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국경 통제 강화를 국정과제 최우선 순위로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이민자들의 사전인터뷰 예약 애플리케이션 운영이 사전 예고 없이 중단됐다. 이번 조치로 미국으로의 입국을 준비 중이던 멕시코 국적 이민자 등 수십 만 명의 발이 묶였다. 일각에선 오히려 불법 이민자들을 양산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취임 직후인 이날 낮 12시를 전후로 미 당국의 이민 사전인터뷰 예약 애플리케이션 ‘시비피 원(CBP One)’ 가동이 중단됐다. 이날 시비피 원 웹사이트에는 “앱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기존 예약은 취소됐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익명의 한 전직 국토안보부 관리는 “현재 약 3만 명의 이민자들이 시비피 원 앱을 통해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예약을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시비피 원은 하루 평균 1450명이 미국 이민 법원을 통한 이민·망명 인터뷰를 예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23년 초 출시 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총 90만 명 이상의 이민자가 이 앱을 이용해 미국에 입국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비피 원 앱으로 사전 예약한 이민 신청자들은 이날 앱 사용 중단으로 인터뷰가 취소되면서 대혼란을 겪고 있다. 이날 캘리포니아주 접경지인 멕시코 티후아나의 엘 차파랄 국경 검문소 등에는 이민 신청자들이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전직 국토안보부 관리는 “총 30만 명에 가까운 이민자들이 멕시코에서 시비피 원 복구를 기다리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시비피 원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남부 국경을 통한 이주를 통제하기 위한 조치로 불법 이민자 단속과 함께 추진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 미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유도해 불법 이민자들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바이든 행정부의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은 최근 미국 공영 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남부 국경에서 망명을 제한하고 개인이 법에 따라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질서 있는 경로를 구축한 (시비피 원)모델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은 시비피 원이 미국에 입국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이민 소송이 진행되는 수년동안 미국에 들어와 머물 수 있도록 악용되고 있다”며 폐지를 촉구해왔다. JD 밴스 부통령은 취임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들(바이든 행정부)은 불법 이민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시비피 원을 더 엄격한 프로그램으로 대체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1기 때처럼 법원 결정 전까지 이민·망명 신청자들을 멕시코에 머물게 하는 ‘이민자 보호 프로토콜(MPP)’을 복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불법 이민자들을 증가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국경 순찰대 고위 관리 출신인 메튜 후탁은 “미국에 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인지, 아니면 불법 입국을 시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며, 이는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멕시코와 접한 남부 국경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집권 1기 당시 추진했던 남부 국경장벽 건설을 재개하고 불법 이민자가 미국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출생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방안도 추진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