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대북관이 조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집권 1기 때에 비해서도 바뀔 조짐이다.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 때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CVID)’ 비핵화를 강조했던 트럼프 1기 행정부였지만 이번 피트 헤그세스(국방부), 마코 루비오(국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헤그세스 후보자는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고 루비오 후보자는 “핵무기는 김정은에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떤 제재도 북한의 핵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수장 후보자의 이 같은 발언은 워싱턴 내에서 나오고 있는 북핵 현실론과도 맞닿아 있다. ‘김정은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북한을 방치하면 결국 핵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최소한 핵을 동결하고 미사일 고도화를 중단시켜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도 제어하는 것이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 아닌가’라는 주장이다. 실제 미 공화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의 한반도 정책 목표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이는 향후 미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예고한다.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목표를 표면적으로는 유지하면서도 핵 동결 및 미사일 개발 중단 등을 조건으로 북한에 제재 완화를 해주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역시 13일 “미국이 단기간 내에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가 발생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핵 동결과 군축 같은 스몰딜 형태로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사실상 실패한다. 미국은 본토에 대한 북핵 위협을 미사일 개발 동결을 통해 제어할 수 있다지만 우리는 북한의 핵을 영원히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 북핵에 상응하는 안보 조치를 얻어내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리를 확보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이 같은 목소리가 나올 것을 예상한 듯 루비오 후보자는 “다른 나라들이 각자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도록 자극하지 않으면서 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우리가 찾는 해결책”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의 자체 핵 능력 보유 움직임이 미국은 물론 국제 사회에서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 같은 북미 대화 속에 끼어들 수 있는지 여부다. 12·3 계엄으로 경제를 관할하는 경제부총리가 안보까지 책임지는 실정이다. 트럼프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방장관의 우리 측 파트너가 누군지도 불명확하다. 만에 하나 한국이 여전히 리더십 공백인 상황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조기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한국은 동북아 외교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우리의 국익을 전혀 주장하지 못할 수 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서울경제신문 신년 인터뷰에서 “트럼프 1기 북미 회담 때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북미 회담을 주선했기 때문에 대화에 관여할 수 있었지만 이제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관계를 맺어놓았기 때문에 한국이 끼어들 틈이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취임도 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을 사실상 이끌어냈으며 러시아와의 정상회담도 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난다면 러북 밀착의 유인이 작아지며 결국 김정은은 미국으로 눈을 돌리고 미북 회담이 성사될 수도 있다.
물론 헤그세스와 루비오가 이제 처음으로 공개 무대에 나선 것인 만큼 한반도 정세에 대한 공부가 안 돼 큰 의미 없는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또 트럼프 성향상 최종 결정은 트럼프가 내릴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미국의 외교정책이 지금까지와는 크게 달라질 것임은 분명하다. 한국 정치가 현재 극단으로 나뉘어 있다 해도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철저한 공조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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