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이제 한국 문학은 세계문학의 중심 무대로 진출했다. 최고의 호황을 맞은 우리 문학은 그 물결을 타고 앞으로 한국 문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모습을 좀 더 널리 알려 본격적인 세계문학으로 자리를 잡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한국 문학의 진가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서 우리는 실력 있는 번역가들을 많이 양성해야 한다. 2008년부터 한국문학번역원은 번역가 양성을 위해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외국어 원어민의 타고난 표현력을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해 주로 원어민 번역가들을 위한 7개 언어권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번역원 아카데미는 뛰어난 교수진을 자랑하며 우수한 수료생들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정식 학위가 아닌 수료증밖에 줄 수 없는 현 상태에서는 수료생들의 활동 범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2년간 훈련을 받지만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인 석사 학위도 받지 못하고 아카데미를 떠나게 된다. 한국문학번역대학원대가 설립돼 그들이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되면 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번역가 노릇을 하면서 평생 교편을 잡고 한국 문학 번역가들을 양성할 수 있게 되고 한국 문화 유포의 거점이 될 것이다.
사실 전문 번역가로서만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교직이라는 보조 장치는 큰 도움이 된다. 그 때문에 역대 번역원 원장들은 아카데미가 대학원으로 격상돼야 한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곽효환 전 원장은 강의 시설 및 디지털 교육 기반까지 구축하고 대학원대 건립을 위한 관련 법안까지 마련해놓았다. 드디어 지난해 12월 31일 문학진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아카데미가 대학원으로 도약하는 첫걸음을 떼게 됐다. 노벨상 수상이 가져온 흥분과 열광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번역대학원대가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2400㎡의 교지와 전임 교원 확보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해 책정한 올해 21억 8800만 원의 관련 예산보다는 30억~40억 원 증액된 약 60억 원이 필요하다. 번역원에서는 노벨상 수상으로 분위기가 좋아졌으니 국회에서 이러한 예산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국회의 파행으로 예산안은 증액 없이 삭감만 반영된 채 통과돼 버렸다.
이제 우리는 추경에서 우리가 바라는 증액이 가능할 것인지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노벨상 수상으로 한껏 올라갔던 사기는 떨어져 버렸다. 모쪼록 정국이 안정돼 일상의 기대와 계획들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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