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채권 시장의 매도세가 강해지면서 세계 주요국의 채권금리가 임계점을 넘고 있다. 고물가 추세가 계속되고 전쟁 등 지정학적 불안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세계 주요국의 재정 적자까지 커지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채권 가격이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은 투자 환경에서 국채를 대량 매도해 금리(수익률)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채권 자경단’이 행동을 개시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8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장중 4.73%까지 오르며 지난해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년물 금리는 4.962%에 달해 5% 돌파를 눈앞에 뒀고, 2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장중 5.026%까지 뛰었다.
6개월 전만해도 미국 국채금리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지난해 9월 말 3.6% 선까지 내려앉는 등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 가능성이 관측되고 11월 선거를 통해 확정되면서 가파르게 상승해 현재 1%포인트 넘게 오른 상태다. 수입품 관세 부과와 감세를 골자로 한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가속화해 금리 인하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인 4.82%까지 올랐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도 2011년 이후 최고치인 1.18%를 기록했고 유로존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도 2.54%로 5개월 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국채금리가 튀어 오르는 이유로 ‘채권 자경단의 귀환’을 의심하고 있다. 채권 자경단이란 인플레이션이나 정부의 재정적자 우려로 채권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을 때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하면서 채권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자들을 말한다. 더 높은 금리를 보장해주지 않을 경우 국채를 팔거나 매입을 거부하면서 빚이 많은 정부의 차입비용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셈이다. 이들의 활동은 주로 ‘무책임한 재정 정책’을 펼치는 국가와 정부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기에 ‘자경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정부는 공공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차입 예산을 크게 늘렸고, 국채 시장에서 매도를 촉발해 30년물 이자 비용이 금세기 들어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며 “프랑스 역시 정치적 위기로 긴축 예산안 통과에 어려움을 겪으며 그리스보다 높은 차입 비용을 내고 있으며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무분별한 차입과 감세를 단행할 것이라는 우려로 국채시장이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이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경제 대국의 국채를 대량으로 매도하면서 채권 시장이 정부와 대립하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모습”이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주요국 재정적자가 올해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채권자경단의 활동도 더 거세질 가능성을 보고 있다. 국채에 대한 매도세를 강화해 국채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머서의 글로벌솔루션 최고투자책임자인 니얼 오설리반은 “더 이상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채권 매수자가 없다”며 “그 결과 채권 시장의 통제력은 더 커진 상황”이라고 짚었다. 실제 ING의 파드라익 가비 글로벌 금리 전략팀장은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올해 말 5.5% 정도 될 것으로 봤고, T로웨 프라이스의 아리프 후사인은 6%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프랭클린템플턴의 채권부문 최고투자책임자인 소날 데사이는 “트럼프의 공화당이 선거 기간 동안 논의된 모든 공약을 그대로 시행하려 든다면 채권 자경단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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