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 6당이 ‘내란 특검법’의 국회 재표결 부결 다음날인 9일 특검 후보자를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한 수정안을 재발의했다. 여당이 ‘독소 조항’이라고 지목한 부분들을 대거 수정해 반대할 명분을 사전 차단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여당은 “수사 범위에 제한이 없는 졸속 법안”이라고 혹평하며 자체 수정안 마련에 착수해 내란 특검법의 여야 합의 처리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진보당·개혁신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야 6당은 이날 12·3 계엄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한 내란 특검법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전날 본회의에서 열린 재표결에서 특검법이 단 2표 차로 부결되자 여당이 문제 삼은 조항들을 수정·발의해 여당 반대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명분을 모두 원천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야당이 이날 재발의한 특검법에서 여당의 주장을 수용한 부분은 크게 △후보자 추천권 △비토권 △수사 기간 및 인력 등 세 가지다. 야당이 특검 후보자 추천 권한을 가진 기존 특검법과 달리 수정안은 후보자 2명 모두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했다. 여기에 대법원장이 추천한 특검 후보에 대해 야당이 거부할 수 있는 비토권도 넣지 않았다. 수사 인력은 205명에서 155명으로, 수사 기간도 최장 170일에서 150일로 줄였다. 대신 기존 특검법에 포함되지 않았던 ‘외환 유치’ 범죄를 수사 대상에 새로 포함시켰다.
야당은 국민의힘이 반대할 명분이 사라진 만큼 최대한 빠르게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기존 특검법도 위헌적 요소는 없었지만 내란의 신속한 진압을 위해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차원에서 수정안을 냈다”며 “가능하면 14일이나 16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수정안에 대해 “여당이 발의한 법안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여당은 시간 끌거나 힘 빼지 말고 특검법을 그대로 수용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수정안에 대해 “부결된 지 반나절 만에 만든 졸속 법안”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은 “민주당이 재발의한 수정안도 문제점이 너무 많아 법안으로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라며 “기존 수사 체계의 예외적 제도인 특검법은 수사 범위를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게 핵심인데도 그 범위에 제한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수사 범위가 광범위해지면 사실상 모든 수사가 가능해져 민주당 산하에 검찰청을 새로 만드는 꼴”이라며 야당 수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야당 수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을 총지휘했다는 의혹과 내란 종사·모의·가담한 의원들에 대한 의혹 등을 수사 대상에 포함했다. 이를 두고 여당은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도 수사 대상에 들어가 별건 수사를 통해 여권 인사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피의 사실 외의 수사 과정에 관한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여당이 지목하는 또 다른 독소조항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야당이 재발의한 특검법에 맞서 자체 수정안 마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이날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실효성 있는 입법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자체 수정안 마련의 의지를 내비쳤다. 야당이 주도하는 내란 특검법 로드맵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포석이다.
한편 내란 특검법과 별도로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시킨 ‘내란 상설특검’과 관련해 최 권한대행이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지 않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기로 했다. 또 최 권한대행이 특검 후보자 추천을 의뢰한 것으로 간주하고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는 가처분 신청도 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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