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최고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머스크와 ‘정부효율부(DOGE)’를 함께 이끌 비벡 라마스와미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발표한 삼성SDI의 배터리 합작법인에 대한 대출 지원에 문제가 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에 기대 대미 투자를 늘린 우리 기업들로서는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대미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머스크는 5일(현지 시간) 라마스와미와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을 찾아 공화당 의원들과 면담하며 DOGE의 임무인 재정지출 효율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이 자리에서 머스크는 전기차 세액공제와 관련한 질문에 “나는 모든 공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전기차 한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태로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없애야 한다는 뜻을 명확히 한 셈이다.
머스크는 올 7월에도 X(옛 트위터)에 “보조금을 없애라. 중장기적으로는 테슬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같은 달 2분기 실적 발표 후에도 “(보조금 폐지가) 경쟁자들에 치명적일 것이며 테슬라도 약간 다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 재정지출에 대대적 메스를 대는 DOGE 수장으로 지명된 후 보조금 폐지를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발언에 무게가 실린다.
머스크의 발언은 보조금 폐지로 다른 전기차 제조사에 테슬라보다 더 큰 타격을 입혀 결국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테슬라는 전기차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유일한 기업이지만 경쟁사들은 전기차를 생산하며 입는 손실을 보조금으로 만회해왔다”고 분석했다.
미국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은 지급 요건이 까다로워 현재 보조금 전액을 받을 수 있는 미국 내 차량은 많지 않다. 다만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이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등 적극적으로 투자해왔던 만큼 보조금이 폐지될 경우 경영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특히 미국 시장 내 한국산 자동차 배터리 판매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IRA가 폐지되거나 지원 규모가 축소되면 이미 전기차 보조금 철폐·축소 추세에 들어선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본격적인 배터리 수요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배터리 기업들은 유럽·아시아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가운데 미국에서의 점유율을 높여왔는데 보조금 폐지로 미국 시장마저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라마스와미도 전날 워싱턴에서 열린 CNBC방송 주최 행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IRA와 반도체법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연방 지출을 흥청망청 승인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최근 미 에너지부가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배터리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가 인디애나주에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을 건립하는 사업에 75억 4000만 달러(약 10조 5000억 원)의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특별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내년 1월 20일 트럼프 당선인의 공식 취임 이후 대출 지원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