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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대장이자 다혈질" 우리가 몰랐던 다산 정약용의 30대 시절

고전학자 정민 교수 '다산의 일기장' 출간

"완벽한 다산 대신 젊은 날의 인간 다산에 집중"

정민 교수가 3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민 교수가 3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민 교수가 3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젊은 날의 다산은 돌격대장이자 다혈질이었습니다. 수 틀리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죠.”

정민 한양대 교수의 손 끝을 통해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의 젊은 시절이 되살아났다. 이달 9일 출간되는 ‘다산의 일기장’을 통해서다.



정 교수는 3일 ‘다산의 일기장’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간 다산을 새롭게 살펴보고 싶었다”며 “완전무결하고 위민정신의 화신이었던 다산 대신 분노할 줄 알고 옳은 것을 위해 싸우기도 했던 젊은 날의 다산이 있었기에 강진 시절의 다산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젊은 날의 다산을 입체적으로 복구하기 위해 젊은 날 다산이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정 교수는 떠오르는 100가지 질문에 대해 직접 답을 만들어 나갔다. '금정일록'(金井日錄), '죽란일기'(竹欄日記), '규영일기'(奎瀛日記), '함주일록'(含珠日錄) 등 그간 문집에 전하지 않았던 일기를 우리말로 옮기고 주석을 더했다. 1795년 7월부터 1797년 6월까지, 다산이 33∼35세였을 때의 기록이다. 정 교수는 “원래는 200~300쪽 분량의 해제를 쓸 생각이었는데 이를 완전히 바꿨다”고 설명했다.

일기에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다산이지만 정 교수는 감춰진 '행간'에 주목한다. 서학(西學)과 관련한 처벌 논의나 상소 공방이 거셌던 당시 정국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다산이 말을 아끼거나, 그답지 않게 '자화자찬'하는 대목을 면밀히 들여다본다.

책은 1795년 초 다산이 정3품 관리로서 승승장구하던 시절 충청도 금정으로 좌천된 이유가 무엇인지, 당시 다산이 천주교도를 적극적으로 잡아들인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답한다. 또, 정조(재위 1776∼1800)와 자신을 비방하는 대신들 사이에서 '서학의 원죄' 때문에 벼슬에 나아갈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상소문을 올린 배경과 글에 담긴 실제 의도를 설명한다.

정 교수는 “다산이 보여준 통찰과 고민 그리고 좌절과 극복의 과정을 살펴서 그 안의 내재된 의미를 우리의 가치로 바꿀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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