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이 취임하기도 전에 미북 정상회담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한 번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 ‘2개의 전쟁’, 불법 이민자 추방 등 당면한 현안이 산적한 만큼 회담 조기 성사 가능성은 낮지만 트럼프가 여러 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회담 개최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고 있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북한의 핵 위협을 관리하는 차원의 핵 군축으로 제재 수위를 완화하는 방식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7일 한미 양국 외교가에 따르면 일단은 미북 정상회담이 조기에 열릴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2018~2019년 미북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러시아라는 ‘뒷배’를 얻었다. 당시에는 유엔 차원의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받고 있었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제재 수위가 낮아진 만큼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유인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양측은 이미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했던 경험이 있고 정상 차원의 ‘톱다운’ 외교를 선호하는 성향도 갖고 있다. 트럼프 측근인 빌 해거티 상원의원(테네시)은 올해 초 로이터 인터뷰에서 “내 경험에 의하면 트럼프는 (실무진을 거치지 않는) 직접적인 대화에 훨씬 더 열려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1기 때 현실론을 부각하며 미북 회담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사라지고 주변을 ‘예스맨’으로 채운 점도 트럼프가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북미 정상 외교에 깊이 관여한 알렉스 웡 전 대북특별부대표를 차기 백악관의 국가안보수석 부보좌관으로 발탁함으로써 북미 대화에 의지를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미국 행정부 내에서 러북 군사 협력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도 회담 개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트럼프는 또 북한과의 관계 개선으로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북 정상회담이 단기적으로 북한의 도발을 줄여 한반도 긴장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안보 위협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는 올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며 북핵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미 공화당은 올 9월 정강정책을 개정하면서 4년 전 대북 정책의 목표로 제시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도 삭제했다.
이런 가운데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은 미국이 북핵을 사실상 용인하고 미국에 대한 핵 위협을 관리하는 수준에서 제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명시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탄도미사일 개발 동결 등 자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만 관리하는 선에서 경제 지원 등 선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트럼프 측에 거래(Deal)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국제안보통일연구부장은 “트럼프가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 동결을 내걸고 협상에 나서거나 동결 단계에서 제재를 풀어주려 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레버리지가 사라지는 난처한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안정적인 우라늄 공급을 위해 20% 정도 농축하는 방안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트럼프가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핵 동결 등을 내걸고 협상에 나서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경우 우리도 핵 무장이나 최소 핵연료 재처리 등 안보 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내놓으라고 미국에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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