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출근 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다가 깜짝 놀랐다.
옆집 현관문 앞에 이틀이 멀다 하고 높여 있던 쿠팡 택배 대신 예스24 포장지가 높여 있었기 때문이다. 집 주인은 “한강 작가의 책을 주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5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또 다른 집의 현관에도 예스24 택배가 와 있었다. A씨는 “나도 한강 작품 3권을 온라인 주문했는데 다른 집들도 비슷한 것 같다”며 “한강 노벨문학상 열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강의 책이 노벨문학상 수상 후 엿새 만인 16일 100만부를 돌파했다. 인쇄소가 살 맛이 났다. 실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한국 출판생산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9979만부)부터 매년 신간 생산 부수가 떨어지는 추세다.
2020년에 8165만부, 2021년 7995만부, 2022년 7291만부를 찍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7021만부를 생산하는 데 그쳤다. 최근 10년간 정점을 찍었던 2018년(1174만부)에 견줘서는 생산 부수가 30% 정도 감소한 셈이다.
출판업 불황 속에 여러 인쇄소가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던 '보진재'가 대표적이다. 보진재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온 가장 명망 있던 인쇄소였으나 불황의 타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2020년 폐업했다. 최근 수년간 중형 인쇄소 5~6곳 이상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고 있다.
삼조인쇄는 현재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인쇄하고 있다. 주 52시간 덕택에 일요일 하루만 쉬고, 24시간 인쇄기를 풀가동하고 있다. 3대의 인쇄기를 하루 종일 돌려도 찍어낼 수 있는 건 1만부 정도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삼조인쇄 외에도 다른 2~3곳의 인쇄업체가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찍고 있다.
삼조인쇄 관계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인쇄소에 가뭄 속의 단비와 같다"며 "이처럼 호황을 누린 건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당시에는 기업체 홍보물을 비롯해 여러 인쇄 요청이 잇따르면서 '월드컵 특수'를 누렸는데 이번엔 '한강 특수'를 누리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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