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전 재정 기조를 지속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을 ‘3%대 이하’로 묶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총지출 규모는 680조 원 안팎에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당초 중기 재정운용계획상 예정됐던 총지출 증가율 4.2%보다 낮고 올해 증가율 2.8%와 비슷한 수준이다. 3.9% 증가율로 가정해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3년간 총지출 증가율은 12.9%로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낮다. 국가채무가 400조 원 넘게 늘어났던 문재인 정부의 첫 3년간 증가율(28.2%)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된다.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있는 예산인 ‘재량지출’ 증가율은 ‘0%’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수입 급감 등으로 올해 세수가 예상보다 10조 원 이상 모자랄 것으로 추산되자 씀씀이를 줄여 나라 살림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건전 재정 의지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를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 정부는 실질적인 국가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비율은 지난해 3.9%에 이어 올해 4.3%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세수 펑크’ 탓도 있지만 법률에 명시된 ‘의무지출’ 예산이 해마다 20조 원씩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지출 638조여 원 가운데 국방비 등을 제외한 재량지출 규모는 124조여 원에 불과하다. 허리띠 졸라매기만으로는 균형 재정을 달성하기 어렵고 경기가 하락할 때 확장 재정을 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의 대표 공약인 ‘기본사회’를 당 강령에 집어넣어 차기 지방선거와 대선까지 현금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일 기세다. 이대로 가면 국가부채 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국가 신인도가 크게 하락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방만 재정을 막는 최후의 보루인 재정준칙 법제화부터 서둘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선거 공약도 걸러내야 한다. 민주당이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여주려면 ‘전 국민 25만 원 지원법’ ‘양곡관리법’ 등 재정 악화를 초래하는 법안들의 재추진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여야정은 이와 함께 의무지출 구조조정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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