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90년대 경제 거품 붕괴로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일본은행(JOB)은 경제 회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내렸다. 일본 개인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을 선호해왔지만 ‘제로(0)’에 가까운 금리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아 외화를 사두거나 금리가 높은 나라의 예금·자산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소위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투자자들은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이라고도 불렸다. 와타나베라는 성(姓)이 흔하고 투자자들 중에 주부가 많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미국이 제로에 가깝게 금리를 내리자 달러캐리 트레이드 현상도 나타났다. 유럽이 초저금리 기조를 보이면서 유로캐리 트레이드도 생겨났다. 와타나베 부인에 빗대 각각 ‘스미스 부인(Mrs. Smith)’ ‘소피아 부인(Mrs. Sophia)’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거래는 외환·금리·세금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하는 만큼 금리나 화폐가치의 방향이 바뀔 때 급격히 청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1998년 아시아 외환 위기 등 금융시장 급변동의 배후에 캐리 트레이드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검은 금요일’ ‘검은 월요일’로 불린 최근의 아시아 증시 폭락의 원인으로 엔캐리 트레이드가 지목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일본은 올리고 미국은 9월 인하를 시사하면서 엔화 강세 전환이 예상되자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대거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엔캐리 자금이 얼마나 청산되고 남았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리를 놓고 미국은 인하로, 일본은 인상으로 방향을 튼 것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청산 자금이 있다면 언제든지 시장을 교란할 수 있는 환경이다. 투자자들이나 수출입 기업들은 글로벌 통화정책 전환기에 신중하고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금융 불안이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시장을 촘촘히 모니터링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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