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으로 해, 그냥 해?”
최근 십년지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내시경 검사를 꼭 수면으로 받아야 하는 지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올해 초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한 K가 “40대 들어서 처음 받는 검진”이라며 호들갑을 떨었죠. 아이를 낳으며 새삼 건강이 최고라는 걸 느꼈다는 K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는데 위 내시경을 비수면으로 하겠다는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저기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아 20만 원 가까이 더 내고 추가 검사를 받겠다더니 수면 비용 5만 원이 아깝다는 거에요. 의외로 수면 내시경에 관한 의견은 분분했습니다. 그날 모인 일곱 명 중 비수면 내시경 경험이 있는 친구가 셋이나 됐죠. 그 중 A는 대장 내시경도 비수면으로 받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 심장병이나 신부전·간부전 같은 만성 질환이 있으면 전문의와 상의해 수면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진정제가 활력 징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A가 수면 내시경을 받지 못하게 된 사연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본인은 기억 나지 않는데 진정제를 투여하고 검사를 받는 도중 난동을 부린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인 ‘MBTI(성격유형검사)’에 비유하자면 A는 ‘I(내향형)’에 가까운 유형이라 더욱 의외였습니다. 또다시 실수할까봐 수면내시경을 받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A의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질 정도였죠.
수면 내시경의 정식 명칭은 ‘진정 내시경’입니다. 진정(sedation)은 약물을 사용해 환자의 의식 수준을 억제하는 것을 말하죠. 적절한 진정은 시술 전 환자가 느끼는 불안감이나 시술 중 발생하는 통증, 불쾌한 기억을 덜어줍니다. 궁극적으로 시술에 대한 순응도·만족도를 높이고 환자의 자연스러운 협력을 유도해 최선의 결과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수면’을 선호하는 추세라 진정내시경 비율이 50~75%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진정 내시경 용도로 가장 많이 쓰이는 약제는 우유주사로 통하는 프로포폴과 미다졸람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환자마다 약제에 대한 반응이 달라 적절한 진정을 유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너무 적은 용량을 주입하면 진정제의 효과가 미흡하니 시술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겠죠. 반대로 너무 과도한 용량이 주입되면 최면 상태가 될 뿐 아니라 호흡부전이 일어나 심각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습니다. 대장 내시경이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던 때가 있었죠? 유명 연예인들이 수면 마취 후 위·대장 내시경을 받는 도중 눈을 부릅뜨고 헛소리를 내뱉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진정제 투여 후 곱게 잠드는 대신 헛소리나 알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건 일종의 부작용에 해당합니다. A처럼 난동을 부리거나 감정적으로 흥분,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는 경우도 100명 당 3~4명 꼴로 나타난다고 해요. 의학적으로는 ‘역설반응’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정확한 발생 기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역설반응은 아직 분명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검사 전 의료진과 상의해 대안을 찾는 건 가능해 보입니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소화기내과 연구팀은 지난 2022년에 과거 역설반응을 경험한 환자에게 미다졸람 투여용량을 줄여서 투약하면 역설반응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역설반응 재발률은 30% 수준이라고 알려졌는데 단순히 부끄러운 것보다 원활한 검사 진행이 어렵고 검사 도중 낙상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의료현장에서는 역설반응이 심해 내시경검사가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해요. 약물마다 진정 효과를 나타내는 기전이 다른 만큼 프로포폴로 바꿔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A처럼 말 못할 사연이 있다면 검사 전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수면마취 때 사용되는 의료용 마약류는 반감기가 짧아 대부분 단시간 에 깨어납니다. 다만 의식을 회복한 뒤 몽롱한 상태가 장시간 지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검사 후 자가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건 물론이고 당일에는 기계조작 등 위험한 업무는 삼가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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