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뜬금없이 중국어였다. 보이스피싱이겠거니 하고 끊었다. 인공지능(AI)이 장착된 휴대폰이 외국어 통역 서비스를 한 것이다. AI의 활용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아직은 생소하다. 그 끝이 어디가 될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공상과학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AI에 지배당하는 아찔한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판도라의 뚜껑은 열렸다. 1800년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될 당시 기계의 활용에 따른 인간의 소외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화이트컬러의 러다이트 운동(180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 등 여러 직업군에서 부침에 따른 혼란이 예상된다.
AI가 보편화된다면 직업을 잃는 직군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관 기술 개발, 즉 이를 활용하는 직종의 시장이 확대되는 효과도 있다. 통·번역 업종의 경우 통·번역사들이 직업을 잃을 것이다. 대신 통·번역기 개발 직종의 취업 기회는 늘어간다. 동시에 이를 활용한 국제 세미나, 해외 관광 시장은 훨씬 확대될 것이다. 결국 통·번역사의 직업 전환이 문제시된다.
교육의 방향성이 중요하다. 소수 전문 엘리트 직군의 양성에 매달리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기존 교육, 특히 고등교육은 전통적으로 체제 유지를 위한 전문가 양성이 목표였다. 부국강병의 국민 국가 시대 유물로 소수의 엘리트그룹이 나머지 국민을 지휘하는 체제의 산물이다. 군인·공무원·법조인·과학자·엔지니어·교사·의사·회계사 등등 관련 자격증 취득이 관건이었다. 전례, 판례, 학습 족보 등 반복 학습이나 단순한 암기력이 우열을 결정짓는 핵심이었다. 나름대로 전통이 스며 있는 직종이기는 하다. 많은 교육기관들도 여기에 추종했다. 지금은 동년배 젊은이 가운데 대학생이 70% 정도다. 좁은 문에 매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 직종 종사자의 상당수가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의료·법조계에서 활용이 시작돼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교육정책 당국은 혁신을 외치면서 답을 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가지 않았던 길에서, 그것도 관료의 책상 머릿속에서 상상력을 동원한 답안지란 뻔할 것이다. 결국은 교육 소비자인 일반인들이 현명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다양해졌다. 그런데도 누구나 다 번듯한 고학력의 전문가가 되고자 매달리고 있다. 전업가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학력 불문하고 최소한의 양식을 지니고 한 업종에 투철한 소위 장인, 찐 프로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얼마 전 한 뮤지컬 배우가 100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구입해 화제가 됐다. 전업가 사회는 다양한 직업군에서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업가들이 촘촘히 활약하는 선진 대중사회가 AI 시대의 미래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정책 당국도 어떻게 변화할지도 모를 미래를 설계하기보다는 의무교육까지만 책임지고 고등교육부터는 손을 떼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완전히 존중해줘야 한다. AI 시대에 는 최말단의 일만이 인간에게 남을지 모른다. 여기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의무교육의 현실적인 방향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섭생 방식부터 인간성 함양 등 기본적인 것부터 몸소 익히고 배우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과 현장 체험,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논리적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연습 등을 해야 한다. 동시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처럼 망치질부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을 익히고 나가게 해야 한다.
취업 포기 청년이 67만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문가 관문을 뚫지 못한 낭인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중국도 고학력 실업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음 주 열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일본은 더 심각하다. 뒷방의 은둔 계층이 150만 명 정도에 이른다. 이들도 고령화되고 있다. 생존 기능 없이 뒷방에 은둔한 후대를 양산하는 끔찍한 세상은 막아야 한다. 전업가 세대인 베이비부머를 멘토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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