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 시간) 오후 9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TV 토론장에 들어서자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유권자들이 숨죽인 채 지켜봤다. 파란색(민주당)과 빨간색(공화당) 넥타이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 전현직 대통령은 미소는 물론 악수도 없이 연단에 서서 ‘세기의 설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쉰 목소리로 자주 말을 더듬고 경직된 표정을 보인 바이든에게 90분이라는 시간은 버거워 보였다.
바이든과 트럼프는 이날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CNN 본사에서 열린 첫 TV 토론에서 일자리·세금 등 경제 이슈와 불법 이민, 낙태 등 사회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 정책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두 후보는 사안마다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대립각을 세웠으나 정책 비전이나 차기 정부 구상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미 언론들은 평가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물려받은 경제는 엉망이었다”며 자신이 80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반면 트럼프는 “그(바이든 대통령)가 만든 유일한 일자리는 불법 이민자를 위한 것이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되살아난 것들”이라고 반박했다. 바이든은 또 삼성전자의 대미 투자 수십억 달러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주요 경제 성과로 꼽았다. 이에 맞서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이 바이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바이든 정부의 우크라이나 및 중동 정책 실패로 심각한 안보 위기를 불러왔다고 맹공했다. 다만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대북 정책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어 한반도 관련 의제가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CNN 방송이 TV 토론 직후 실시한 시청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잘했다’는 응답은 67%로 ‘바이든이 잘했다(33%)’를 2배 이상 압도했다. 4년 전과 달리 쉽게 격앙되지 않고 노련하게 토론을 이끈 트럼프의 판정승이다. 반면 바이든은 3월 국정연설 때 보여준 활력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외려 고령 리스크만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는 “트럼프 발언은 부정확한 경우가 많았지만 바이든은 초점을 잃은 것 같았다”고 논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당은 패닉에 빠졌고 바이든이 후보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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