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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칼럼] 아시아 '안보아키텍처' 변화 이해하기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美,中견제 인태전략 주변국 동참 유도

쿼드 등 小다자 협의체로 유연성 높여

'안보 네트워크'에 협력 더 요구할 것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지정학적 변화가 너무 위중하므로 단지 전술적 차원의 정책 조정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안보 아키텍처(security architecture)’가 요구된다고 했다. 리콴유의 예상대로 세계 안보 아키텍처에는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고 그런 변화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러한 안보 아키텍처 변화의 중심에 있다.

미국은 중국이 갖지 못한 2개의 중요한 전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는 국제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60개에 육박하는 국가와 맺고 있는 동맹 및 준동맹이다. 국제 제도와 동맹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 만들고 공들여 관리해온 전략자산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공표하며 대중국 견제를 본격화했지만 제도와 동맹을 경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성향 때문에 미국 고유의 전략자산을 잘 활용하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와 달리 다양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 즉 ‘제도적 균형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이러한 전략에 동맹 및 파트너 국가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우선 다자 및 소(小)다자 제도의 활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시아 다자외교에 소홀했는데 바이든 행정부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같은 다자주의 외교 무대를 활용해 역내 국가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자주의 제도는 너무 많은 국가가 참여하고 포괄적인 목적을 지향하고 있어 실질적인 결과 도출에는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 따라서 소수의 국가가 참여하는 소다자 제도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일본·인도·호주가 참여하는 쿼드(QUAD)와 미국·영국·호주가 참여하는 오커스(AUKUS)다. 2023년에는 한국·미국·일본이, 2024년에는 미국·일본·필리핀이 참여하는 3국 소다자 안보 협의체를 발족하기도 했다. 이러한 소다자 안보 협의체는 협력의 목적 및 성격이 다르지만 유연성이 떨어지는 기존의 다자주의 제도 및 양자 동맹과는 분명히 차별화된다.



미국은 쿼드같이 다소 규모가 큰 소다자 제도뿐 아니라 다양한 이슈별로 ‘소규모’ 소다자 제도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데 규모가 아주 작아서 ‘마이크로(micro)’ 소다자 제도라고도 한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이러한 소규모 소다자 협의체를 ‘맞춤형 또는 임의적 협의체(bespoke or ad hoc bodies)’라고 칭했는데, 덩치가 큰 협의체에 비해 특정 사안별로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들이 즉시 협력을 도모해 바로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대상국이라 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 도서 국가들이 선호하는 개발 협력 및 해양 협력에 특화된 소다자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소다자 협의체가 기존의 다자주의 제도 및 동맹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이 기존의 제도 및 동맹과 상호 보완적이고 따라서 서로 협력하며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 ‘승수효과’가 발생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초기에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제도와 동맹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안보 네트워크’ 형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캠벨 부장관은 이를 ‘격자형(lattice-like)’ 안보 구조라고 했는데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 ‘안보 네트워크’가 더 적합한 표현으로 보인다. 이런 안보 네트워크에서 동맹 사이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급증하는 중국의 위협 때문에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필요성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아시아의 집단 안보 동맹 구축은 불가능하다. 냉전 당시에도 그랬지만 신냉전 시대 아시아 국가들의 전략 이익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전략이 ‘안보 네트워크 구축 전략’이다. 어쨌든 미국이 허브가 되고 미국 동맹국이 바큇살로 작용하는 ‘허브-앤드-스포크(hub-and-spoke)’ 아시아 안보는 시효가 다해가고 있다.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동맹 간의 협력을 더 요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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