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나온 치료제 외에는 약이 없대요. 살 날이 몇 개월 안 남았다는 말을 듣고 영정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
14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최모 씨(60·남)는 “암이 다 퍼졌으니 주변을 정리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최씨는 작년 6월 검진차 받은 간 초음파와 혈액검사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돼 정밀 검사를 받았다. 복강경 수술과 함께 조직검사를 시행하고 퇴원할 당시만 해도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꼈기에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10월경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담도암 4기’로 진단됐다.
◇ 조기진단 어려운 담도암, 원격전이되면 5년 생존율 3% 그쳐
담도암은 지방의 소화를 돕는 담즙(쓸개즙)이 분비, 이동되는 통로(담도)에 발생하는 암이다. 기관 자체가 몸속 깊숙이 위치한 데다 빨대와 비슷한 수준의 좁은 통로 형태라 악성 종양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담도암 환자의 약 70%는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전이된 상태에서 진단된다. 운좋게 조기 진단돼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절반 이상은 재발된다. 주변 장기에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해부학적 특성 때문에 종양 침범도 빈번하다.
위암·대장암 등 소화기암의 5년 생존율이 70%을 넘어섰지만 담도암은 수십년째 28.9%에 머물고 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앙암등록본부 통계에 따르면 2017~2021년 기준 담낭 및 기타 담도암의 5년 생존율은 50.0%였다. 담도암 환자의 절반이 5년 이내 사망한다는 의미다. 그나마 암이 처음 발생한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 단계일 때에 한해서다. 주위 장기나 인접한 조직 혹은 림프절을 침범한 국소 진행 시 5년 생존율은 34.2%까지 떨어진다. 최씨처럼 멀리 떨어진 부위로 전이된 4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은 3.2%에 불과하다.
◇ 12년만에 나온 신약…“치료반응 나타나면 3년도 더 산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서울대병원을 찾은 최씨에게 이상협(사진) 소화기내과 교수는 “고령의 담도암 환자에게 써볼 만한 신약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담도암 1차 치료로 고려할 수 있는 항암제는 젬시타빈과 시스플라틴을 함께 쓰는 화학항암제 병용요법이 유일했는데 2022년 11월 면역항암제 ‘임핀지(성분명 더발루맙)’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는 것.
면역항암제가 담도암 적응증을 확보한 첫 사례인데 한국인이 대거 참여한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을 통해 장기 생존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담도암으로 젬시타빈·시스플라틴과 함께 임핀지를 투여 받은 환자 4명 중 1명(24.9%)이 치료 2년 시점에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항암화학요법의 2년 시점 생존율이 10.4%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생존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린 것이다. 이 교수는 “최근 발표된 데이터를 보면 3년 시점에 생존한 환자도 14.6%나 됐다”며 “사망 위험을 26% 낮춘 의미 있는 결과”라고 소개했다.
◇ “8개월 만에 실비 한도마저 소진” 부작용보다 무서운 ‘재정독성’
최 씨는 이후 8개월째 임핀지를 투여받고 있다. 임핀지 병용요법은 일정 횟수 이후 화학항암제를 뺀 단독요법으로 전환된다. 독한 항암제로 인한 부작용이 줄어 고령 환자들도 비교적 건강한 컨디션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다. 최씨는 진단 당시 동전만 했던 종양이 좁쌀 크기로 줄었다. 10㎏가까이 빠졌던 체중은 임핀지 단독치료 기간 원상 복구됐다. 그토록 원하던 결과인 데도 최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하룻밤 자고 나면 불어있는 치료비 걱정 때문이다. 임핀지는 아직 담도암 치료 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질 않는다. 담도암 환자는 1회 치료 시 체중 1㎏당 20㎎을 투여해야 하는데 1바이알(500㎎)당 가격이 340만 원 내외라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체중 70㎏인 환자는 화학요법 가격을 제외해도 1사이클에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든다. 3주 간격으로 총 8사이클을 마치려면 약값만 1억 원 넘게 소요된다. 그동안 실비보험으로 치료를 받았던 최씨는 4월부터 한도가 소진돼 전액 본인 부담으로 치료 중이다. 암 치료를 위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정기적인 수입이 없어지면서 국민연금 조기 수령까지 신청했다. 최씨는 “저축해 놓은 자금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치료를 지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암환자가 되고서야 이러한 사각지대가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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