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일반 현역병의 18개월 보다 2배 많은 복무기간 부여는 징벌인가? 공정인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이들에게 ‘36개월’의 대체복무 기간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일반 현역병의 18개월보다 2배 긴 대체복무 기간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30일 재판관 5(기각)대4(인용) 의견으로 대체역법 제18조 1항, 제21조 2항과 대체역법 시행령 제18조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대체역법은 병역 체계를 유지하고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헌법적 법익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판의 쟁점은 대체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을 ‘36개월’로 한 기간 조항과 이들을 합숙하도록 한 조항이 대체복무요원에게 과도한 복무 부담을 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다.
청구인들은 대체복무기간을 36개월로 정한 기간 조항(제18조), 대체 복무 요원 합숙 조항(제21조)와 대체 복무 기관을 교정시설로 한정한 시행령(제18조) 등의 법 조항들이 과도한 복무 부담을 주고 대체역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들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36개월이라는 긴 복무기간은 과도한 ‘징벌적’ 성격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다수 재판관은 대체역법 일부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역병 역시 합숙 복무를 하고 있고, 대체역은 군사적 역무와 관련한 것이 모두 제외돼 단순히 교정시설에서 근무하는 것이 징벌적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대체복무요원, 전시에 병력 소집 안돼”
헌재는 2배 긴 복무기간이 적법한 이유로 대체복무요원이 복무 과정에서 군사적 역무에서 배제되고 전시에 병력으로 소집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복무를 마친 대체복무요원은 전시근로소집대상은 되지만 인명 살상, 시설파괴가 수반되는 행위에 배제된다는 점도 합리적 근거로 해석했다.
헌재 관계자는 “대체복무제는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를 조화시키고, 현역복무와 대체복무 간 병역 부담 형평을 기해 궁극적으로 국가 안전보장이라는 법익을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이러한 공익이 대체복무요원들의 불이익에 비해 작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다수의 재판관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심판 조항들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이종석 소장(재판관),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대체복무기간을 육군 현역병의 복무기간의 2배로 설정한 것은 군사적 역무가 배제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다고 볼 수 있고, 대체복무기간이 현역병의 복무기간의 최대 1.5배를 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국제인권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교정시설을 유일한 대체복무기관으로 한정한 점이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에 대한 인식 변화를 저해하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여론은 갈려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2018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해 지난 2020년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됐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가 범죄는 아니지만 ‘병역기피자’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높은 분위기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범죄라고 할 수 없지만, MZ세대를 포함해 병역 의무를 이행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부정적 인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군에 입대할 수 있는 장병이 줄어드는 추세가 빨라지면서 군 입대를 회피하려는 어떤 명분도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절벽 여파 탓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조관호 책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병역자원 감소 시대의 국방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병력은 48만 명으로 50만 대군의 벽이 무너졌다. 2018년에 60만 명대에서 5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불과 4년 만이다. 북한군 상비군은 118만명 수준으로, 우리 군은 북한의 40%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군의 병력 급감은 저출생에 따른 병역자원 감소가 직접적인 이유다. 상비병력 50만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매년 22만명을 충원해야 한다. 하지만 KIDA가 주민등록인구와 생존율 자료를 토대로 연도별 20세 남성 인구를 추산한 결과, 2036년부터 20세 남성 인구는 22만 명 아래로 떨어지고 지난해 출생한 남아가 20세가 되는 2042년에는 12만 명까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저출생에 따른 병역 자원 급감이라는 불안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불과 10여년 밖에 남지 않아 은 상황으로 군 안팎으로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에 대해 강한 반발의 의견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대체역법은 2018년 대법원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같은 해 헌법재판소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대체복무할 수 있는 방법을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월 시행된 법이다.
‘합리·객관적’ 근거, 현역 1.5배 초과 가능
결국 국방부(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주장에 대한 반대 진영)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대체복무제와 관련해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지점은 ‘복무기간’'이다.
국방부는 입법 취지에 맞춰 △입영기피자들의 대체복무제 악용 예방 필요성 △복무강도 △군복무와 대체복무제 사이의 형평성 확보 등을 이유로 현역병(육군 기준) 복무기간의 2배인 36개월의 복무기간을 설정했다.
반면 대체복무 대상자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국제인권기구의 가이드라인 등을 근거로 현역 복무기간의 1.5배가량의 복무기간이 적절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다수 시민사회단체도 국제적 판단 사례 등을 근거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1.5배안을 지지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양심적 병역 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들도 1.5배 기준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 개별 국가의 상황을 고려한 복무기간을 정하고 있다. 특히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OECD 국가 중 그리스는 1.7배를 적용 중이다.
이와 관련 UN자유권규약위도 ‘합리적이고 객관적 근거’를 언급한 것을 고려해 각국은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해 대체복무제를 설계하고 있다. 즉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의 1.5배를 초과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객관적 근거’가 존재한다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과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징벌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도출될 수 있다.
게다가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특수성은 물론 군필자와 현역 입영대상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전문연구요원 및 군법무관·군의관의 복무기간(36개월) 등을 고려하면 대체복무의 기간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유가 적용된 제도 설계가 됐다는 평가도 많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도입의 맥락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현역복무와의 ‘형평성’만 놓고 단순 비교해 설계가 잘못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근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과거 1년 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는데, 대체복무요원의 업무도 기존에 재소자가 하던 일을 대부분 이어받은 데다 복무기간(36개월)은 수감보다 2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제복 입은 재소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합숙 형태 또한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국민 정서에 기댄 결과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징벌성’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체복무 신청자는 도입 초기인 2020년 한해 2000명에 달했지만, 2년 만에 77%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병무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해 대체복무 신청자는 1962명이었지만 2021년 574명, 2022년 453명으로 급감했다. 2023년 10월까지 총 267명이 신청했다. 첫해와 비교하면 2021년에는 29.3%, 2022년에는 23.1%만이 신청한 것이다.
헌재의 결정으로 대체복무 기간에 대한 합헌 결정이 내려져 정부는 대체복무자의 복무기간을 조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병무청은 “헌재 판결 결과가 나오면 군 복무 중인 장병과의 형평성,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따라서 헌법소원 결과, 징법성으로 없고 공정하다는 합헌 결정으로 현역병 복무기간 보다 2배 근무토록 하는 대체복무제는 기존 방식을 그대로 지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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