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0년 7월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 향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고의적으로 축소·왜곡했다는 감사원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잇따라 편성하는 등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었는데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53.0%까지 늘어난다는 예측 결과가 나오자 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홍 전 경제부총리가 수치를 두 자릿수인 81.1%로 떨어뜨리도록 했다.
감사원이 4일 발표한 ‘주요 재정관리제도 운영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기재부는 2020년 7월 장기재정전망 발표에 앞선 시뮬레이션에서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최소 111.6%, 최대 168.2%로 산출됨을 확인했다. 이는 2015년 전망치인 62.4%에 비하면 곱절로 증가한 수치다. 홍 전 부총리는 이튿날 청와대 정례 보고에서 “국가채무비율이 100%를 넘는다고 지적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고 청와대는 “불필요한 논란이 커지지 않게 잘 관리해달라”고 지시했다.
홍 전 부총리는 이후 기재부가 129.6%의 신규 검토안을 보고하자 나주범 재정혁신국장(현 교육부 차관보)에게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두 자릿수로 낮추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제성장률에 연동’한다는 핵심 전제를 ‘총지출 증가율 연동’으로 바꾸라고 하는 등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다. 경제성장률이 2%면 총지출 증가율도 2%에 묶이는 식이다.
기재부는 같은 해 9월 “2060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64~81% 수준으로 전망된다”고 발표했다. 나 차관보는 홍 전 부총리의 지시를 한 번의 반론도 없이 따랐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의 지시를 두고 “고령화로 의무지출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최소한의 정부 기능도 할 수 없는 가정을 제시했다”며 “특정 의도에 맞는 국가채무비율을 도출해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조세재정연구원과 함께 정당한 전제·방법에 따라 장기재정전망을 다시 해본 결과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148.2%로 예측됐다.
감사원은 홍 전 부총리의 비위 행위를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관련 인사 자료를 인사혁신처에 알리도록 기재부에 통보했다. 다만 김수현·김상조 청와대 전 정책실장 등과 달리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지는 않았다. 예측치인 만큼 통계 조작으로 송치하기는 애매하다는 이유에서다. 감사원은 또 나 차관보에게 주의를 요구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