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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인구 겨울이 온다…자녀 1명당 ‘월 100만원 지원’ 등 과감한 정책 펴야”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

저출생·고령화는 전 세계적 현상…한국이 유독 심각해

‘미쳤다’ 소리 나올 정도 획기적 정책이 출산 인식 바꿔

저출산 예산 특별회계 필요, 교육재정교부금 활용 가능

어차피 쓸 돈 효율적으로 써야, 무상교육·주택 제공 등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17년 한국의 저출생·고령화를 겨냥해 ‘집단적 자살 사회’라고 경고했을 때만 해도 합계출산율이 1.05명이었다. 지난해 4분기에는 합계출산율이 0.65명까지 떨어졌다. 출산율이 발표될 때마다 우울한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인구절벽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20일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인 출산율 하락으로 ‘인구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중에도 한국은 가장 빠르고 극단적으로 인구 변환기를 맞고 있다”며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구구조의 변화”라고 지적했다. 생산 가능 인구가 급격히 줄고 노인 인구는 늘면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재정 악화, 사회 갈등 등 전방위적 문제들이 터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양육 부담, 경력 단절 등으로 인해 출산을 기피하는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획기적인 해법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 현금 직접 지원 정책, 특별회계 설치 등은 경제학자로서 내가 누구보다 반대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미쳤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과감한 정책이 필요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이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한국의 출산율 하락이 유독 심각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출산율 하락과 고령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이제는 중국도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이 그만큼 사회·경제적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인구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이 ‘퍼스트 무버’인 셈이다. 한국의 유별난 교육열, 낮은 여성 경제활동률, 성별 임금격차 등은 출산을 더 기피하는 배경이 된다.

-인구 감소보다 인구구조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 이유는.

△인구 감소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인구구조의 변화다. 우리나라는 생산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구구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점이 진짜 심각한 문제다. 새로운 인구구조로 적응하기까지 고통스러운 ‘데스밸리’를 건너야 하는데 한국과 같이 ‘작은 나라’는 그 과정을 감당하기 힘들다. 미국·중국·일본과 같이 인구·경제 규모가 큰 나라는 그나마 버틸 여력이 있다. 인구 5000만 명 규모의 나라는 빠른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저출생 대책이 왜 이렇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가.

△그동안 나왔던 정책들이 미흡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육아휴직 제도만 봐도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다만 저출생·고령화 정책이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가 빨랐다.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내 아이가 나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 때문에 출산을 꺼리게 됐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30년 동안 부양해야 하는데 그 미래가 예측 가능하도록 하는 장기적이고, 획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책이 부족했다.

-출산에 대한 인식을 바꿀 만한 획기적인 정책으로 어떤 게 있는가.

△자녀 1명당 월 100만 원씩 18세까지 지원하면서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자녀 출산에 따른 주택을 제공해야 한다. 이 정도는 해줘야 출산에 대한 인식 변화가 생길 것이다. 현금성 지원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은 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직접 지원금을 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저출산 예산을 연간 50조 원씩 쓴다고 하면서 수요자들이 체감할 수준의 현금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어차피 쓸 돈이라면 효율적으로 쓰는 게 낫다.

-저출산 대응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특별회계를 만들고 예산이 부족하면 목적세를 걷어야 한다. 내가 평생을 재정학자로 살면서 이런 소리를 할 날이 올 줄 몰랐다. 외부 회의 등에서 이런 주장을 하면 다른 경제 전문가들이 나를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눈으로 본다. 그런데 인구문제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정책 결정권자들이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 사는 중장년층이어서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양곡관리나 철도 설치 등을 위해서도 특별회계를 만들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저출생과 관련한 특별회계를 못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 현재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급여가 고용보험기금에서 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돈 쓰는 데 한계가 있다.

-가뜩이나 재정 적자가 심각한데 저출생 예산을 대거 지출할 수 있을까.

△당연히 여유가 있거나 덜 중요한 예산부터 끌어와서 써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다. 내국세 수입에 연동해 걷다 보니 지난해 기준 64조 원에 달한다. 학생 수가 줄어 교부금이 넘치다 보니 각 지방교육청에서 불요불급한 곳에 지출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세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약 목적세를 걷어야 한다면 출생률에 연동해서 일몰되도록 하면 된다.

-최근 정부가 신설 방침을 밝힌 ‘저출생대응기획부’를 만든다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예전부터 주장했다. 교육·노동·복지 등을 아우르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력 있는 장관이 수장이 되면 효과를 거둘 것이다. 국회에서 반드시 관련 법이 신속하게 통과돼야 한다. 다만 총괄 부처 신설이 ‘마술봉’은 아니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저출생 해법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출산율 하락 곡선과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증가 곡선은 정확히 반비례한다. 일과 출산·육아가 양립되지 않으면 출산율이 올라갈 수 없다. 정책 수립은 정부의 역할이지만 수행은 민간의 몫이다.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의 실제 활용도를 높이려면 민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일·가정 양립을 위해 육아휴직을 더 늘려야 하나.

△엄마들에게 물어보면 육아휴직 기간 연장보다는 유연근무제 도입을 더 원한다. 경력 단절과 생활비 우려 때문에 장기간 휴직하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원하는 부모들이 많다. 다만 재택·탄력·단축 근무 등이 가능해야 육아와 병행이 가능하다. 또 기업에는 아이가 아파서 집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도입돼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자영업자 간 격차도 줄여야 할 간극이다. 인적 여력이 있는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육아휴직 사용이나 유연근무제 도입이 쉽다.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고 자영업자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들에 마냥 부담을 지우기도 힘들다.

△기업들은 사회적 역할도 해야 하지만 이윤 추구가 최우선 과제다. 출산·육아 지원에 따른 부담을 기업이 짊어져야 한다면 가족 친화 기업은 지속 불가능하다. 가족 친화 인증 기업에 세무조사를 유예해주고 출입국 시 우대해주는 수준의 현행 혜택은 기업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직원의 출산으로 인한 대체 인력 고용 등에 대해 세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인구 부족 시대에는 기업의 출산 지원을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로 봐야 한다. 연구개발·시설 등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적자원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이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구 겨울’이 오고 있다”며 “신속한 저출생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출산율을 높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이민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데.

△전향적이면서도 정교한 이민정책을 짜야 한다. 체계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인력의 이민을 받을 것인지 분석해야 한다. ‘싼 맛’에 해외 인력을 대거 불러들였다가 언젠가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일찍이 저출생 문제가 시작된 유럽 국가들이 해외 저숙련·저임금 노동자를 수입했다가 지금 사회 갈등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높은 최저임금 때문에 저숙련 인력들이 몰려오고 있다. 고학력 전문 인력의 이민을 유치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일하며 우리 사회에서 융합하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인 안목의 이민정책이 필요하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은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하는가.

△그동안 인구 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에 힘썼다면 앞으로는 구체적인 정책 제안에 주안점을 두고자 한다. 법안 발의와 법 개정 등도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한다. 현재의 제도들은 팽창 시대의 제도다. 이제는 축소 시대다. 시대 변화에 맞게 법과 제도를 빨리 뜯어고쳐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민간·정치권·행정부가 전문적 의견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균형 잡힌 정책을 만들어간다. 우리는 그동안 국책연구소 중심으로 정책이 만들어졌으나 정치에 휘둘리는 문제가 있었다. 정치적 제약 없이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는 민간 연구소의 장점을 살려 저출생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다.

-급락하는 출생률을 보면서 국가 소멸까지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인구 겨울이 오고 있다. 한국은 가장 빠르게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을 상황이다. 저출생 대응이 글로벌 경쟁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국 정부도 인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인구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한국이 좀 유별난 DNA를 가진 나라다. 전 세계 석학들이 제조업 발전에서 한계를 허문 나라라고 했다. 지금은 출생률 하락에서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반전도 빨리 이뤄낼 수 있는 저력을 가진 나라가 한국이다. 저출생 문제도 국민들이 집중해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또다른 한계를 허물 것으로 기대한다.

◆She is…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휴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소장,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과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등을 지냈다. 첫 민간 출신 통계청장과 한국경제학회의 첫 여성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인구문제 민간 싱크탱크인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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