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에서 생존과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바로 최첨단 레이더(radar)다. 그 중에서도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가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AESA(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에이사) 레이더는 전자파를 주사해 주야간 상관없이 먼 거리의 표적 여러 개를 동시에 탐지·추적 가능한 무기 체계다.
특히 레이더 전면부에 장착된 1000여 개의 소형 통합 모듈은 각각 송·수신이 가능해 서로 다른 주파수를 만들어 송신할 수 있다. 기계식으로 구동하는 기존 레이더에 비교하면 많은 표적을 추적하는 동시에 적의 전파 방해와 레이더 추적에 따른 피격을 회피할 수 있다. 동시 교전도 가능하다. 이를 기반으로 AESA 레이더는 다표적 탐지·추적과 피아식별, 영역탐지, 유도탄 유도, 요격 확인 등의 기능과 임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우리 군의 첫 AESA 레이더 개발은 차기 호위함에 탑재하기 위한 함정용으로 시작됐다. 인천급(FFG-I) 함정 전투체계 사업에 참여한 LIG넥스원은 3차원 선회형 AESA 대공 레이더를 개발했다. 한화시스템 역시 국산 중거리 지대공미사일용(천궁) AESA 기반의 다기능 레이더 개발에 성공해 수출형 천궁에 AESA 기반 다기능레이더를 제공할 예정이다. 현재 개발 중인 장거리 지대공미사일 체계 또한 AESA 레이더 기술이 탑재된다.
이처럼 차기호위함(FFX-B3)과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L-SAM) 등 해상과 지상을 가리지 않는 국산 최첨단 다기능레이더(Multi-Function Radar·MFR)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LIG 넥스원이 개발한 SPS-550K는 3차원 선회형 AESA 레이더는 최대 탐지거리가 250㎞로 알려졌다. 인천급 외에 대구급 호위함과 마라도함에서도 쓰인다. SPS-550K의 진보된 대공수색능력에 더해 함대공 미사일 해궁이 통합돼 해군의 개함방공 능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시스템의 경우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와 11억 달러 규모의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II(천궁-II) MFR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천궁-II MFR은 기존 천궁 MFR의 성능을 높인 덕분에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식별·대응할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하지만 항공용 AESA 레이더의 경우 국내 연구개발의 한계로 관련 기술이 뒤쳐져 있었다.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에 탑재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 받으려고 했지만 거부당하기도 했다. 항공용 AESA 레이더는 기존 레이더 보다 소형화 및 냉각 기능, 정보처리 과정 등이 훨씬 복잡해 미국과 유럽, 영국, 중국 등 일부 선진국만 원천기술을 보유할 만큼 최첨단 기술로 개발이 어려운 분야다.
미국이 AESA 레이더를 포함한 핵심 기술이전을 거부하면서 정부와 방산기업들은 국내 개발을 추진해 왔다. 일각에서는 해외 기술 이전 없이 국내 기술로만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화시스템이 2016년 개발에 착수한 지 4년 만에 항공용 AESA 레이더 시제 1호기를 출고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세계에서 12번째로 항공용 AESA 레이더 개발국 반열에 올랐다. 국산화율은 항공용 AESA 레이더 양산 1호기를 기준으로 89%에 달한다.
AESA 레이더는 전투기에 적용될 경우 ‘전투기의 눈’ 역할을 한다. 기계식 레이더를 적용한 전투기보다 전투력은 3~4배 높여준다. 공중과 지상 표적에 대한 탐지와 추적, 영상 형성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미래 전투기의 핵심 장비다.
항공용 AESA 레이더는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사업 핵심장비 중 하나로 꼽힌다.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최첨단 레이더로, 공중과 지상 표적에 대한 탐지·추적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기계식 레이더처럼 안테나의 기계식 회전이 아닌, 레이더 전면부에 고정된 1000여 개의 작은 송수신 통합 모듈을 전자적으로 제어함으로써 빠른 빔 조향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4년 만에 항공용 AESA 레이더 개발 성공
국방과학연구소와 한화시스템이 공동 개발한 한국형 전투기 KF-21‘보라매’에 장착될 항공용 AESA 레이더는 2023년 상반기에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은 개발에서 양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무기체계를 신속히 전력화할 수 있도록 체계 개발과 양산을 동시에 추진하기 위한 절차다. 이에 따라 2026년 실전 배치될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에 장착할 수 있게 그 이전에 ‘최종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할 계획이다.
해외에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2022년 5월 이탈리아 대표 방산기업 레오나르도(Leonardo S.p.A.)와 항공기용 AESA레이더 해외 수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 우위와 가격 경쟁력을 모두 확보한 경공격기 AESA 레이더를 공동 개발해 글로벌 AESA 전투기 레이더 시장을 본격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또 다른 국내 방산업체인 LIG넥스원도 항공용 AESA 레이더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LIG넥스원은 국산 초음속 경공격기 ‘FA-50’에 탑재할 수 있는 AESA 레이더 시제품을 ‘2023 공군 민군협력 세미나·전시회’에서 처음 공개했다.
FA-50 AESA 레이더는 현재 FA-50에 장착된 기계식 레이더 대비 다수 표적 동시 탐지·추적, 공중·지상 표적 동시 추적 등 여러 방면에서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질화갈륨 소자를 활용한 송·수신 모듈을 적용해 소형화 및 경량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같은 기술력 덕분에 LIG넥스원은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정부 예산 약 850억원을 투입해 항공용 AESA 레이더 관련 핵심기술 응용연구 2건과 시험개발 2건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자체 투자와 협업을 통해 FA-50 AESA 레이더 프로토타입 제작도 마쳤다. 물론 아직은 FA-50 AESA 레이더 최종 개발을 위해선 넘어야 과정이 산적하다. 지상 통합·시험과 테스트 항공기 및 FA-50 탑재 비행시험 등 검증을 위한 과정들이 필요하다.
분명한 건 항공용 AESA 레이더는 K방산 수출을 주도할 다크호스라는 점이다.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를 비롯해 해군의 차세대 수상함, 육군의 최첨단 미사일에 활용될 군의 핵심 무기 체계기 때문이다. 군 당국도 항공용 AESA 레이더의 완벽한 국산화를 통해 해외 수출 지원에도 적극 힘을 실어줄 방침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향후 한국형 전투기 KF-21 ‘보라매’ AESA 레이더의 해외 수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향후 다른 유사 무기 체계에도 적용할 수 있어 K방산 수출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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